‘미적 감응력’으로 소개된 ‘취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대상을 소비하고 즐기는 구체적인 의미로 수렴되었다. 1920년대 이후로 ‘취미’는 문명, 교양, 정신적 개조라는 개화기의 시대적 사명을 탈각해 갔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문화상품이 된 ‘취미’가 소비와 구체적 실천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오락’과 여가의 의미로 수렴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 근대 초기 한국에서 ‘취미(趣味)’의 가치가 인식되고 취미라는 새로운 문화적 실천이 근대 대중문화의 근간이 되어간 과정을 밝힌 흥미로운 연구서가 발행되었다. 『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 담론』(소명출판, 2012)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담론』은 특히 1900∼1920년대 공연문화로서의 다양한 대중연극이 ‘취미’담론과 결합하면서 시기별로 어떤 특징적인 면모를 드러냈는지 재구(再構)했으며, 1900년대 연극개량담론을 필두로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한국 근대의 공연문화가 ‘취미’라는 새로운 가치와 봉합되면서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식민성의 논리하에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해명해 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한국 근대 공연문화와 대중연극의 형성과정과 ‘취미’라는 근대적 ‘제도’의 영향관계를 밝힌 최초의 연구서! 이 책의 저자 문경연 교수는 『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 담론』을 통해 근대 한국의 ‘취미(趣味)’는 서구/일본의 영향과 국내적 배경 맥락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서구 취미론의 영향을 받아 그 의미가 획정(劃定)된 일본어 ‘취미(趣味)’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서구의 근대 미학사상과 그것의 집약적 개념인 ‘taste’가 메이지 시대 일본에 영향을 주었고, ‘taste’의 일본어 번역어로 ‘취미(趣味, しゅみ)’가 등장하며, ‘미적 판단력’, ‘대상의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는 미의식’, ‘정신적 미각’으로서의 ‘taste’가 일본 전통의 미학(美學) 개념인 ‘취(趣, おもむき)’와 결합하였고 ‘趣味(しゅみ)’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조선에서는 이미 일본의 식민화가 추진되며 진행된 다양한 식민지 통치전략을 통해, 식민지 조선을 문명화하려는 일본의 취미사상이 한국에 유입된 것이다. 『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 담론』은 이렇게 1900년대에 등장한 낯선 기표, ‘취미(趣味)’의 구체적인 용법과 활용 양상은 개화기에 발간된 학회지와 신문매체, 잡지, 각종 문서 등을 통해 분석했다. 그리고 1900년대 ‘취미’는 전통적 용법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개화기적 문명관과 서구어(일본) 번역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확장, 전위, 변용되는 역동성을 드러냄을 논리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근대 공연문화의 장에서 근대적 ‘취미’를 향유하는 문화주체가 어떤 식으로 상상되고 계몽ㆍ교육되었는지를 연구해… 이 책에서는 ‘취미’가 구체적으로 발화되기 시작하면서 현실적으로 가치를 보증 받고 효과를 발휘하는 근대 극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개화기의 극장 공연은 당대 계몽주의자들과 여론의 전면적 비판을 받았다. 전통연희의 봉건적 구습과 악폐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국권상실의 위급한 정세에 사치와 유흥을 조장한다는 풍속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하지만 1907년 이후 사설극장과 원각사의 공연물, 신파극 등이 연극개량담론과 풍속담론의 공격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연극의 미덕을 내걸었다. “民智啓發上의 大趣味”, “관람자의 취미(趣味)를 돕는”것, “취미(趣味)와 실익(實益)”이 그것이었다. 음부탕자(淫婦蕩子)로 비난받던 관객들은 ‘진보한 세인’, ‘고상한’ 관객으로 불렸고, 일본연극이 모범으로 설정되었다. 애국계몽기에 민족주의적 언론매체와 개화 지식인들의 계몽담론 안에서 지속적으로 비판받았던 연극의 사회적 위상과 관객의 위상이 1910년을 전후하여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안에서 새롭게 발화된 개념이 바로 ‘취미(趣味)’였다. 그리고 1900년대 각종 매체의 ‘취미’가 근대적 지식과 앎, 문명을 향한 계몽의 차원에서 강조되었던 것처럼, 연극의 ‘취미’ 역시 ‘개량’의 징표이자 근대적 ‘신문화’가 가진 가치로 내세워지고 있는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은 조선인들을 정치적인 장에서 배제하고 조선을 취미화하고 조선인을 취미의 주체로 허명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전략이 결합된 근대 대중문화 이 책 『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 담론』은 1910년대가 되면 ‘극장가기’, ‘연극구경하기’라는 “새로운 문화실천이 관객에게 취미를 부여하고 관객의 취미를 함양하는 행위로 의미화하였다”고 말한다. 연극 관객들의 경험을 지각하고 판단하는 용어로 ‘취미(趣味)’가 활용된 것. 그러나 한편으론 『신문계』와 경성에서 발간된 일본어 잡지 『조선』, 『조선급만주』를 통해 일본 제국이 식민지 조선을 ‘취미화(趣味化)’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었음도 밝혀냈다. 조선을 미화(美化)하고 경성에 각종 공공적(公共的) 취미오락기관을 설비하고자 했던 것이, 재경(在京) 일본인을 위한 문화행정이면서 제국의 지방으로 포섭된 경성을 통치하려는 식민전략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한마디로 ‘취미’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기술로 활용되고 있었다 말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사사화(私事化)된 영역이라 할 ‘감각’이나 ‘개성’으로서의 취미가 일상을 규정하는 하나의 제도로 정착하는 데는, 학교 교육의 영향력이 컸다”고 말한다. ≪수신(修身)≫교과서는 ‘취미’를 교육내용에 포함시켰고, 학생의 ‘취미’는 학적부(學籍簿)와 같은 공적 기록 안에 학생 개인의 이력과 특징을 표상하는 항목으로 규정되었다. 교육제도와 결합하며 교과과정을 통해 교육된 ‘취미’가 공식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도회(都會)의 관람문화와 근대적 교육을 경험한 개인은 취미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사교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등 ‘취미’야말로 개인의 인격과 품성, 정신적 능력의 표상이라는 새로운 가치관 아래 취미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준이 되었다. 연애와 결혼의 조건으로 취미가 내세워졌고,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명하는 수단으로 취미가 거론되었다. 1920년대 사회에서 ‘취미’라는 문화적 실천이 결혼과 사교의 기준이 되면서 문화자본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하고 있음을, 당시 세태담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취미’는 ‘근대적 개인’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하나의 표상이다 한일합병과 3ㆍ1운동의 실패라는 역사적 사건을 경유하면서 근대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근대적 기획에 실패한 한국인은, ‘국가’ 안에서 ‘개인’으로 자기-정립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개인성의 구축은 비정치적인 부문, 일상의 장으로 축소되었다. 전(前)시기인 개화기의 ‘개인’담론은 반드시 국가와 사회를 전제로 한 개인이었다. 그러나 191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인은 국민(國民)이 아닌 제국의 신민(臣民)인 한에서 ‘개인’으로 주체화될 수 있었다. 한편 일본은 조선을 취미화(趣味化)하고 식민지인들을 취미의 주체로 허명(虛名)했다. 제국의 취미를 훈련시키고 교육했으며, 공통취미를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별했다. 당시의 지식인과 엘리트들이 ‘문학’과 ‘예술’의 장에서 내면세계로 침잠함으로써 근대적 개인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면, 다수의 민중들은 일상에서 상품소비와 대중문화를 향유함으로써 타인과 구별되는 개인성과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것이 가장 용이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식이었다. 이렇게 의식적ㆍ무의식적 영향관계 안에서 대중들이 문화-주체(cultural subject)로 형성된 데는 근대 자본주의의 대중문화가 근저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전략이 결합되었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관객으로 호명된 근대 조선인 다시 말해 『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 담론』이 이렇게 근대 공연문화의 장에서 근대적 ‘취미’를 향유하는 문화주체가 어떤 식으로 상상되고 계몽, 교육되었는지를 보여준 것은 결국 비정치적 일상의 영역에서 근대 ‘개인’이 구성되는 맥락을 살펴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근대적 개인, 즉 근대 주체가 구성되는 과정을 해명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극장’ 공간 안에서 관객으로 호명(呼名)된 20세기 전반기의 한국인들은, ‘문명인(文明人)’이라는 시대적 정체성과 동시에 ‘신민’이라는 정치적 정체성, 그리고 ‘(개인) 관객’이라는 문화적ㆍ심미적 정체성을 형성해갔기 때문이다.
목차책머리에
제1장 서론 : 극장의 출현과 ‘취미’라는 기표 1. 문제 제기 2. 연구사 검토 3. 연구 방법 및 범위
제2장 근대 취미담론의 형성과 전개 1. 서구 ‘취미’담론과 일본 ‘취미’담론의 형성과 전개 1) 서구 계몽주의와 근대 ‘취미’담론 2) 일본 메이지 문화개량운동과 근대 ‘취미’담론 2. 한국 근대 취미담론의 기원과 형성 1) 근대 취미담론의 전사 : 18세기 신지식인층의 문화를 중심으로 2) 1900년대 계몽담론과 ‘취미’ 개념의 등장 3) 1910년대 ‘문명’과 식민주의적 변용으로서의 ‘취미’
제3장 근대 공연문화와 취미의 제도화 1. 계몽의 기획으로서의 근대 초기 연극담론 1) 극장의 출현과 1900년대 연극개량담론 2) 근대 시각장의 체험과 관극문화의 형성 2. 문화공동체의 출현과 공공취미의 보급 1) 1910년대 ‘극장취미’와 관객의 형성 2) ‘취미화’를 둘러싼 제국-식민의 역학관계
제4장 근대 초기 공연문화의 분화ㆍ교섭과 취미의 통합적 기능 1. 근대 교육제도와 대중문화를 통한 취미의 확산 1) 근대 관람문화와 공연물의 연계 2) 교과 과정과 ‘취미’의 내면화 : ‘수신’교과와 ‘학적부’의 취미 3) 근대적 인간형과 ‘취미’라는 척도 2. 근대 극장을 중심으로 한 공연문화의 교섭 양상 1) 막간 공연의 흥행과 대중연극취미 2) 연쇄극과 활동사진취미 3) 대중연극 삽입가요의 유행과 음반취미
제5장 결론 : 일상과 개인, 취미의 정치학
부록 1. 李王職博物館 編, 『李王家博物館所藏品寫眞帖』, 李王職博物館(京城), 1918 2. 朝鮮總督府 編, 『高等普通學校修身書』 卷3, 朝鮮總督府(京城), 1923 3. 友枝高彦, 『(改正) 中學修身』, (合)富山房(東京), 1925 4. 乙黑武雄ㆍ關寬之 共著, 『(改正)學籍簿精義』, 東洋圖書株式合資會社(東京), 1938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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