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신보》는 1895년 2월 17일 일본정부가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선방침 등을 선전할 목적으로 발간되었으며, 1906년 7월 31일 폐간할 때까지 서울 주재 일본거류민과 조선정부의 관리 및 시민들에게 각종 홍보와 여론 형성을 주도하였다. 이 신문은 1·2면은 국문과 국한문을, 3·4면은 일문(4면은 광고)을 사용하였으며 격일로 발행되었다. 지면의 내용으로는 사설(社說), 잡보(雜報), 문원(文苑), 소설(小說), 시사소언(時事小言), 기서(寄書), 각지통신(各地通信)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한국인과 일본인 등 많은 구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창간 초기에 당시로서는 민간의 유일한 신문이었다는 이유 외에도 국문으로 다양한 기사를 제공하고, 개화의 필요성 등 계몽적인 논조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한성신보』는 한성부 및 조선 경제 전반과 관련된 각종 경제활동에 관한 기사를 풍부하게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