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문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인 사회생물학적 사유는 지금의 현상만이 아니라 19세기 중엽 유럽에서 제국주의의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의 계몽기에도 외세의 침탈에 대한 부국강병의 이론으로 넓게 수용되었다. 조선에서는 개인성, 주체로서의 인간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진화론은 계몽의 일환으로 수용되었다. 과학혁명의 영향으로 근대유럽은 모든 현상을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거대한 지적 흐름을 만들었다. 과학주의는 초기에 물리학의 원자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은 18세기의 계몽주의로, 즉 자유주의와 공리주의로, 이후 19세기에 등장한 다윈의 생물학의 영향을 받은 사회진화론으로 구체화 되었다. 사회진화론은 생명성과 유기체성을 강조하는 낭만주의의 사회이론 중 하나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계몽주의가 이성, 자유 등을 강조하는데반해, 사회진화론이 힘과 유기적 질서 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외견상 전혀 다른가치를 지향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계몽주의의 주객분리의 인식론적 구조와 지배의 패러다임은 힘의 논리로 이행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런 점에서 서구의 계몽은 자기 안에 ‘반(反)계몽’의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사회진화론으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진화론은 계몽의 극한으로 읽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