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지난 2019년 6월 22일 히토쓰바시대학에서 열린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사업단·히토쓰바시대학 언어사회연구과 한국학연구센터 공동주최 제1회 국제학술 심포지엄의 성과를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문학, 철학, 역사학, 어학 등의 분야에서 동아시아의 인문학과 상호인식을 검토하는 총 12개의 발표가 이루어졌고, 19세기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를 대상으로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대만, 동남아시아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주제가 다루어졌다.
한때 학술장을 넘어서 현실의 정치경제까지 포섭하는 새롭고도 중대한 이론의 역할을 했던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기존의 수많은 인식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린 일종의 사건이기도 했다. 그것은 전쟁과 식민지지배, 타자에 대한 무지와 다툼으로 얼룩진 동아시아 각 지역의 과거와 미래를 다시 그리기 위한 이념이었다. 하지만 이념으로서의 동아시아가 품고 있던 비판적 대화를 통한 사유의 가능성은 오늘날 그 놀라웠던 등장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기능부전에 빠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 북한, 중국, 대만, 일본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홍콩, 태국, 미얀마 등에서 벌어졌던, 혹은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투쟁의 과정과 의미를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은 충분치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내용과 그 바탕이 된 2019년의 공동 심포지엄은 동아시아론이 침체에 빠진 오늘날 동아시아와 인문학의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 위한 작은 출발점을 마련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먼저 생산적인 상호인식을 가로막고 있는 여러 문턱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했다. 특히 지식과 문화의 영역에서 이러한 문턱들이 존재하는 양상과 방식을 묻고자 했다. 이 책에 실린 12개의 글은 각각 다루고 있는 주제와 시대가 다르지만, 근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여러 불연속적인 문턱의 경계를 고찰하거나, 이를 넘어서려는 연대의 시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다.
제1부에서는 감정, 언어, 신체 등의 영역에서 행해진 권력의 침투와 변형의 문제를 다룬다. 제2부에서는 번역과 글쓰기의 정치성, 제3부에서는 지식인과 동아시아 상호인식의 교착을 검토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문화의 교섭과 그 문제점들을 고찰한다. 이 책은 위의 분석을 통해 ‘동아시아’와 ‘인문학’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기 위한 첫발을 내딛어보고자 한다. 앞으로도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사업단과 히토쓰바시대학 언어사회연구과 한국학연구센터는 동일한 문제의식 아래 지속적으로 연구교류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