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문학 연구의 지형은, 빠른 주기로 대체되곤 했던 담론의 주류성이 급격히 소멸하면서, 담론적 귀속성 여부보다는 문학사의 자료가 되어온 문학 현상이나 시대를 되살피고 그것을 꼼꼼하게 재구하는 일에 가파르게 경사되고 있다. 시대와 조건이 달라져도 문학 연구가 근본적으로 지켜가야 할 기율과 가치는 어떤 것인가 하는 고전적이고 원론적인 성찰이 대두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시대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난 시대에 대안적 위상을 차지했던 연구 경향을 무반성적으로 따라가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적 상황과 문학 연구라는 형식의 관련성에 대한 메타적 통찰의 축적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청에 답하듯, 최근 문학과사상연구회는 ?신경향파 문학의 재인식?(소명출판, 2016)을 출간하였다.
‘재인식’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신경향파 문학의 재인식』은, 192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 강력한 자장을 드리웠던 신경향파 문학의 역사적, 미학적 전개 과정에 대한 연구의 결실이다. 이 시기의 한국문학은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현실에 대한 형상화를 꾸준히 이어왔는데, 이러한 지향과 방법이 더 넓고 활발한 구도를 형성하게 된 것이 바로 신경향파 문학이다. 특별히 러시아 혁명 후에 일본을 경유하여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이 근원적으로 매개되면서, 신경향파 문학은 프로문학으로 이어져 식민지 현실에 대한 더욱 날카로운 대응의 형태를 띠게 된다.
제1부에서는 신경향파 문학 가운데 시와 비평의 지형을 다룬 글을 수록하였다.
먼저 유성호의 글은 신경향파에서 카프로의 인적 연속성이 단절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속성이 그들 자신의 내적 기질에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고, 외적 기율이나 경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밝혔다. 신경향파시가 주목했던 민족 패러다임은 경험적인 것인 데 비해, 카프 시인들이 받아들였던 마르크시즘은 추상적인 것이었다는 점, 그리고 신경향파시가 주목했던 ‘검’이나 ‘신’ 같은 종교적 개념이 소멸하고 일방적으로 과학성으로 경사된 것도 카프로의 이월이 신경향파시의 어떤 가능성을 지워버린 실례라는 점을 논증하였다.
김신정의 글은 조명희 문학의 일관성과 역동적 변화를 포착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인문지리학의 개념에 착안하여 ‘장소성’과 ‘장소상실’의 의미와 양상을 규명하였다. 조명희 문학에 대해 ‘장소’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동경 유학과 귀국, 소련 망명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과 문학적 여정의 일관된 테마와 역동적 변화를 포괄하고, 망명 이전과 이후의 문학 세계를 같은 층위에서 논의한 것이다.
이현식의 글은 김기진의 1920년대 카프 시절 비평을 다루었다. 그동안 이 시기의 비평사 연구에 대한 반성, 곧 카프 조직 중심의 연구나 논쟁 중심적 연구로부터 벗어나 한국 근대문학 이론의 발전사라는 측면을 부각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글이다. 카프 시절 김기진의 글들을 검토함으로써 한국근대문학비평사의 한 축을 재구성하였다.
김재용의 글은 염상섭 글에 대한 메타적 분석의 결과이다. 염상섭이 주장했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관계, 프로문학과 비프로문학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었다. 염상섭은 프로문학이 민족 문제에 대해 무지했던 것을 비판해야 하고 계급 문제에 소홀했던 국민문학론은 편협함을 넘어서야 한다고 보았으며, 민족을 초역사화시키는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고 민족 문제를 정신상의 문제로만 보았던 관념적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는 것이 논지이다.
제2부에서는 신경향파 소설의 해석을 담았다. 모두 네 편이 실렸는데, 최서해와 송영 문학이 주로 다루어졌다.
김재영의 글은 최서해 초기 소설의 특성과 그에 드러나는 세계인식에 다가가기 위해 첫 발표작인 ?토혈?의 개작 과정에 주목하였다. ?토혈?을 ?기아와 살육?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초기 최서해 소설의 지향이 응축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잔혹과 공포를 결합시키고 있는 작품을 통해 최서해가 드러내고 있는 것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이라기보다는 ‘처참한 파국’의 공포에 대한 상상임을 논증하였다.
한수영의 글은 최서해 소설을 재독하기 위해 ‘분노’라는 정서 혹은 감정을 키워드로 삼았다. 최서해 소설을 ‘분노’를 중심으로 읽으면서, 기존 연구와 비평이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환기하였다. ‘분노’가 특정 작품들에만 집중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이해해온 기존 독법을 확장하여, ‘분노’가 텍스트 표면에 노출되는 작품은 물론, 그런 감정의 폭발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작품의 경우에도 ‘분노’가 응축되는 서사구조의 내부 갈등을 해석하였다.
손유경의 글은 ‘빈궁’이나 ‘체험’ 대신 ‘연애’나 ‘열정’ 같은 키워드를 독해의 지침으로 삼아 최서해 소설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체험에 근거한 현실 폭로라는 문학사적 평가가 최서해 작품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내적 열정의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었다는 문제의식 아래, ‘연애냐 혁명이냐’라는 갈림길에 서서 고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본격적으로 고찰하였다.
최병구의 글은 프로문학에 나타난 정념의 문제에 주목하였다. 식민지 프로문학은 물질적 조건과 거기서 촉발된 사건에 근거하면서도 그것을 돌파하는 동력을 정념으로부터 얻게 되는 문화예술의 성격과 연동된다는 것이다. 프로문학을 정념의 서사로 읽음으로써 프로문학에 스며들어 있는 당대 사회에 대한 작가 개인의 감각과 ‘정치적 공동체’의 절합 과정을 질문하였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하정일 교수의 유고와 연보를 실었다.
하정일 교수의 글은 신경향파 문학론이 민족주의와 밀접한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민족주의는 신경향파 문학론의 중요한 사상적 원천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다만 부르주아 민족주의가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의 민족을 상상한 데 비해 신경향파 문학론은 민중이 중심이 된 아래로부터의 민족을 기획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신경향파 문학은 낭만주의, 자연주의, 민족주의를 급진화한 문학이고, 마르크스주의와의 만남 또한 낭만주의, 자연주의, 민족주의가 급진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내발적 귀결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신경향파 시와 비평의 지형
제1장 신경향파시의 시적 가능성과 자산 유성호
1. 신경향파시의 문학사적 맥락
2. 신경향파시의 초기 단계
3. 낭만성과 민족주의적 열정의 결속-이상화의 시
4. 식민지 시대의 궁핍과 이산 경험-박팔양의 시
5. 신경향파시는 무엇인가
제2장 조명희 문학에 나타난 장소성과 장소상실의 의미 김신정
1. 서론
2. 조명희 문학에서 ‘집’의 의미
3. 조명희 문학의 장소성과 장소 상실
4. 결론
제3장 한국근대문학비평사의 구상과 1920년대 김기진의 평론 이현식
1. 문제제기-왜 김기진인가
2. 한국근대문학비평사의 구상
3. 팔봉 김기진의 평론과 리얼리즘의 발견과정
4. 김기진의 대중화론을 비추는 거울, 염상섭의 대중문예론
5. 문인에서 평론가로
6. 1920년대 비평사 연구를 위하여
제4장 바깥에서 본 신경향파 문학 김재용
염상섭의 내재적 비판을 중심으로
제2부 신경향파 소설의 해석
제1장 최서해 초기 소설에 형상된 ‘공포’와 ‘파국의 상상력’ 김재영
1. 머리말
2. ?토혈?과 ?기아와 살륙?의 거리
3. 잔혹과 공포
4. 공포와 파국의 상상력
5. 맺음말
제2장 ‘분노’의 공(公)과 사(私) 한수영
최서해 소설의 ‘분노’의 기원과 공사(公私)인식을 중심으로
1. 서해 소설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와 재독(再讀)의 필요성
2. ‘분노’의 배제와 그 인식론적 근거
3. 분노하는 ‘주체’와 이성/비이성의 문제
4. 서해 소설에서의 공(公)과 사(私)의 구조
5. ‘변신’의 고통에 집중하는 ‘지연(遲延)’의 크로노토프
6. 맺음말
제3장 최서해 소설에 나타난 ‘연애’의 의미 손유경
1. 체험 작가 최서해와 ‘내면’의 문제
2. ‘愛’의 위계질서-연애냐 인류애냐
3. ‘私的인 것’의 귀환
4. 맺음말
제4장 본성, 폭력, 사랑:정념의 서사로서 프로문학의 조건(들) 최병구
송영 소설을 중심으로
1. 문제제기-프로문학과 정념
2. 동경 노동자 생활과 ‘내면성’의 정치적 의미
3. 사건으로서의 폭력, 연대로서의 사랑
4. 줄이며
제3부 신경향파 문학과 공통감각
신경향파 문학과 1920년대의 공통감각 하정일
하정일 연보
간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