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말’이라는 임계점
『오이디푸스의 눈-식민지 조선문학과 동아시아의 지리적 상상』(소명출판, 2016)은 무엇보다 ‘식민지 말’에 주목한다. 당시의 시간들은 패전/해방 이후 국민국가 건설 과정 속에서 억압되거나 은폐되어야 했지만, 사실 ‘식민지 말’이라는 시간은 근대 한국의 모더니티의 역사적 조건들에 대해, 비록 그것이 군국주의적 파시즘으로 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사상적 모색을 전개한 때였다. 근대의 끝에 서서 근대 이후의 인간의 삶에 대해 탐색했다는 것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근대를 극복하기 위한 사상적 모색의 지점으로서 ‘식민지 말’은 중요하다.
그런데 근대 극복의 모색의 지점으로서의 ‘식민지 말’에 주목할 때 대체로 그것은 ‘시간성’의 측면에서 다루어져왔다. 하지만 이 책은 ‘공간성’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본서에서 ‘식민지 말’은 국민국가와 세계 체제가 제국-식민지 체제의 임계점에서 어떻게 자기의 지리적 위상을 새롭게 구축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식민지 조선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와 로컬리티의 관점
이는 제국-식민지 체제기,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식민지 말 동아시아 지역 질서와 식민지 조선의 위상 변동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중일전쟁기의 ‘동아신질서(東亞新秩序)’론에 이어 아시아-태평양전쟁기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론은 모두 제국 일본의 침략적 팽창을 위해 아시아 제 민족의 해방?공생을 주창한 이념이었고, 그 지리적 범위는 동아시아를 넘어 태평양 권역의 거의 대부분을 포함했다. 하지만 대동아라는 지역주의의 구상 속에서 식민지 조선은 다른 식민지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일본=중앙/식민지=조선=지방이라는 위계화된 구도 속에서 로컬리티의 대상이 되었다. 제국 일본이 아시아이면서 아시아가 아닌 이중의 위상을 구축하면서 각 식민지 지역을 지배ㆍ통치하였던 점을 감안했을 때, 식민지 조선은 대동아공영권을 구성하는 하나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제국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점에서 이중의 모순적 위상을 부여받았다. 이 책은 이처럼 식민지 말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변동 과정 속에서 흔들리는 식민지 조선의 위상에 관한 당대 문학자, 지식인들의 인식과 상상을 살피기 위해 지역주의와 로컬리티의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지리적 상상
이 책에서는 식민지 말 문학작품, 여행기, 지리지 등을 대상으로 근대 한국의 지식인ㆍ문학자들의 동아시아 각 지역에 대한 공간 인식과 경계 감각을 규명하고, 그에 기초한 식민지 조선, 조선인, 조선문화의 위상 재정립 과정 및 정체성 구축 과정을 논의하였다. 이는 식민지 말 조선의 지식인ㆍ문학자들이 제국 일본의 권역이 새롭게 팽창ㆍ획정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일본, 만주, 중국, 남양(南洋), 타이완,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각 지역과 향토(鄕土), 고도(古都) 등 식민지 조선의 지방들로 ‘이동(mobility)’하였고, 그러한 이동의 체험을 통해 각각의 지역과 지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결과물들을 생산해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새로운 위상을 부여하기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즉, 이 책에서는 제국의 지리적ㆍ문화적 확장에 따라 새롭게 발견된 공간과 장소들에 대한 식민지 조선 지식인ㆍ문학자들의 시선과 재편되어가는 세계 체제와 동아시아 지역 질서 속에서의 지리적 상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문학작품에 주목하였다.
이처럼 제국-식민지 체제기 근대 한국인의 이동의 양상이나 공간 표상과 장소성에 대해 주목하는 논의는 식민지 조선문학 연구에 문화지리학적 방법론의 접목을 통한 새로운 연구방법론의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한국인의 지리적 상상의 표상물로서 식민지 조선문학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마련하는 작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 문학과 공간, 장소에 관한 논의가 대체로 풍속사적 자료 소개나 집적에 그치고 있다면, 문학의 지리적 상상에 관한 논의는 개인의 이동과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근대문학의 성격을 새로운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제 『오이디푸스의 눈』을 통해 근대성의 시간의 형식으로서의 근대문학이 아닌, 근대성의 공간의 형식으로서의 근대문학, 식민지 조선문학에 대해 살펴볼 때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서론-식민지 말이라는 임계점에 서서
제2장 제국과 지방, 그 사이의 조선/문학
1. 동아시아 지역주의와 조선 로컬리티
1) 제국 일본과 동아시아 지역주의
2) 식민지 조선과 지방의 로컬리티
2. 국민문학으로서의 지방문학의 (탈)경계
1) 전환기 국민문학으로서의 지방문학
2) 식민지 지방문학의 세계문학 상상
제3장 제국의 지방, 식민지 조선의 위상
1. 제국의 지방, 반근대의 시공간
1) 제국의 지방으로서 향토화된 조선
2) 반근대의 시공간으로서 향토
2. 고도의 (재)발견, 문화접경지대의 창출
1) 고도 여행과 조선미의 (재)발견
2) 문화접경지대의 창출과 장소애
3.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조선의 지정학적 위상
1) 아시아-태평양전쟁과 국민문학 이데올로그
2) 대동아공영권 건설과 병참기지로서의 조선
제4장 제국의 중앙 일본, 통합되는 아시아
1. 제국의 중앙, 상경의 심상지리
1) 내선일체의 역설적 공간 위계화
2) 중앙에의 동경, 상경의 심상지리
2. 통합되는 아시아, 대동아의 성지
1) 아시아 통합의 구심점으로서 일본
2) 대동아 성지 순례와 일본인-되기
제5장 대륙 아시아, 제국의 신생하는 영토
1. 왕도낙토 만주의 균열, 세계도시의 환상
1) 제국의 수용소, 왕도낙토의 공간 균열
2) 세계도시 여행과 경계 넘기의 환상
2. 소환되는 전장, 폐허와 신생의 중국
1) 중화 세계의 해체와 지나의 천시
2) 전쟁의 폐허와 신생하는 영토
제6장 해양 아시아, 확장하는 대동아공영권
1. 남양의 재발견, 동양 실지의 회복
1) 상하의 땅, 남양의 재발견
2) 전쟁 수행과 동양 실지의 회복
2. 타이완 여행, 식민지 조선의 거울
1) 시찰의 형식과 민족지적 서술 공간
2) 여행자 시선과 식민지인의 분열
3. 제국의 시선, 베트남의 지정학적 상상
1) 대동아의 전략적 중개지로서의 불인
2) 지정학적 상상과 포섭되는 베트남
제7장 결론
참고문헌
간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