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이른바 ‘종교적 상상력’으로 가장 유명한 다형(茶兄) 김현승(金顯承)은 62년 동안 지상에 머물면서 모두 300편 가까운 시편과 여러 권의 논저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삶을 줄곧 살았으며, 그 신앙에 회의하여 신으로부터 멀리 떠나 인간적 고독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고독의 내면에서 다시 적나라한 인간의 형상으로 시세계를 확산하려 하였으나, 마침내 신에 절대 귀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생을 마감한다. 결국 그의 시세계는 ‘신성’과 ‘고독’이라는 이율배반의 지평으로 흔들리며 집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관념 속에 갈등적으로 내재하는 ‘신성’에 대한 추구와 그것에 대한 회의로서의 ‘고독’을 변증적으로 노래한 매우 드문 시인이었던 것이다.
다형 김현승의 시적 편력은 극적 과정, 곧 신성과 고독의 변증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김현승을 만나는 일은 그래서 ‘신성’에 가까운 사랑과 평화와 축복과 전율의 경험이요, ‘고독’에 가까운 메마름과 단단함과 외따로움과 극한의 경험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형 김현승 시 연구>(소명출판, 2015)는 이러한 김현승의 시세계에 분석적으로 다가간 결실이다. 통시적 작가론을 뼈대로 하여 그가 집중적으로 구현하려 했던 시적 키워드와 창작방법의 일관성 그리고 사상적, 정서적 독자성을 변별하려 애쓴 결과이기도 하다. 김현승에 관한 여러 저작이 이미 세상에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낱낱 시편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통해 다형만의 언어적, 정서적, 사상적 특질에 다가가는 미시적이고 귀납적인 방법론을 썼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현승의 시적 궤적
김현승의 시는 한국 현대시에서 시의 ‘형이상성’을 탐구한 좋은 예로 기억될 수 있다. 동일한 사물이나 사건을, 감각적 차원과 추상적 차원의 양쪽을 왕래하면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형이상시’의 방법이다. 그의 시는 자신의 구체적 이미지 속에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관념을 실어 그 안에서 신성과 자유를 추구하였던 형이상시의 전범으로 읽힐 만하다.
또한 김현승이야말로 서양 문학의 견지에서 본다면 ‘낭만주의’의 가장 위대한 부분에 이르려고 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낭만주의에서 ‘감상성(感傷性)’이 다음 순간 유한한 인간 조건, 인간의 덧없는 운명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낭만적 우수(憂愁)로 고양되었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김현승에게 ‘고독’ 또한 다음 순간 지상적인 것의 사라짐에 대한 인식을 마련하는 형이상학적인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인과 기독교와의 관계를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 김현승의 시는 기독교적 신앙만이 근간(根幹)이 아니라 질서(소망)는 물론, 혼돈(절망)의 부르짖음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기독교 시란 진실한 신앙적 체험과 심미적 가치가 융화되어 형상화된 하나의 시 작품이다. 김현승이 타계하기 전 약 4년간의 시작 활동은 신에 귀의한 행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신에 대한 회의와 갈등 속에서 신을 잃고 인간적 고독을 시적 대상으로 삼았던 시기에도 그의 관념 안에는 여전히 신이 내재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극적이고 대단원적인 그의 귀의야말로, 그의 끊임없는 신에 대한 의식이 궁극적으로 가닿은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그에게 시는 자신의 교양과 인식 그리고 기질과 인생 체험을 표백하는 언어적 방식이었고, 따라서 그가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 의지했건 아니면 그것에서 떠나려 했건 역설적으로 그의 생애는 그로 하여금 시와 종교에 대한 통합적 인식을 가멸차게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 점은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드물고 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관념’의 진경(眞境)을 보인 시인
저자는 김현승을 ‘한 시대를 풍미하곤 하는 유행적 사조에 일방적으로 몸을 내맡기지 않고, 오히려 독자적인 혼과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켜가며 시를 써 갔던 그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보기 드문 관념의 진경을 보인 이채롭고 독보적인 시인’이라 평가한다. 그의 시를 객관적으로 분석?평가해보면 시를 향한 치열한 열정과 시인으로서의 정결했던 삶에 대해서까지 눈감을 수 없는 우수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자연인으로서나 시인으로서나 흠 없고 정결했던 삶을 시종 지켜 갔던 김현승의 궤적은 우리 시사가 소중히 안아 들여야 할 지맥(地脈)이다.
우리는 여전히 김현승의 현재성이 역동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시편은, 주로 ‘슬픔’을 노래해온 우리 근대시사의 저편에서, 메마름과 단단함과 외따로움의 한 정점을 통해 이채롭고 견고한 관념의 운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형 김현승 시 연구>를 통해 김현승 시편에 관한 이해와 경험이 넓어지길 고대해본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논의의 출발-현대시사와 김현승
제1장 김현승 연구의 흐름과 과제
제2장 김현승 문학의 기저와 시론
1. 김현승 문학의 기저(基底)
1) 기독교적 자장-‘종교적 상상력’의 의미
2) 당대적 모더니즘의 영향-‘이미지즘적 방법’의 의미
3) 시대적 상황-‘시적 상상력’의 의미
2. 김현승의 시론(詩論)
1) 창작시론의 양상-문학적 자전(自傳)의 의미
2) 시와 언어에 대한 인식
3) 시와 종교의 관련성
4) 시정신에 대한 인식-시적 건강성의 문제
제3장 김현승 시의 세계
1. ‘새벽’ 지향의 이원적 알레고리-초기 시와 <새벽교실>
1) 이원적 알레고리의 시적 구성
2) 새벽 지향의 인유적(引喩的) 상상력
3) 1930년대적 이미지즘 의 징후
2. 신성(神聖)과 역설(逆說)의 추구, 시적 명랑성과 지사적 개결성-<김현승시초>, <옹호자의 노래>
1) ‘신성(神聖)’의 이미지 추구
2) 명랑성의 시학과 감각적 이미지
3) ‘자아’에 대한 역설적 인식
4) ‘사라짐’의 역설적 의미 추구
5) ‘시간’의 주관화, ‘추억’과 ‘종점’의 이미지
6) 양심과 개결성, 자기 탐구의 시학
7) 보유
3. ‘고독’ 천착을 통한 존재론적 ‘자기 탐구’-<견고한 고독>, <절대고독>
1) ‘신앙’에 대한 방법적 회의와 반(反)나르시시즘
2) ‘견고성/결정성’에 대한 관심
3) ‘고독’의 시적 천착
4. 체험적 직접성과 절대귀의-<마지막 지상에서>, <날개>
1) 무갈등의 화해 공간
2) 편력(遍歷)의 마감과 신앙시
제4장 요약 및 결론
김현승 연보
참고문헌
간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