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으로 가는 언어
우리는 늘 제국의 언어를 배운다. 일제치하에서 조선인들은 반강제적으로 일본어를 습득해야 했고, 그 흔적은 광복 70여 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우리말에 남아 있다. 남아 있는 것은 일본어의 흔적만이 아니다. 제국의 언어를 배우는 습관 또한 우리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학 진학에도 취업에도 가장 중요한 요건은 ‘영어 점수’이고, 이에 따라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도 유치원에서부터 영어를 배운다. 급기야 영어 발음을 위해 구강수술을 하는 극단적인 사례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렸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외국어와 제2공용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우리는 늘 영어를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단지 ‘어떻게 하면 영어를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방법론에만 한정되어 있다. 우리가 ‘왜’ 막상 사회에 나가 보면 일부를 제외하곤 그다지 쓸 일도 많지 않은 영어를 ‘배워야만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영어를 습득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니고, 우리만의 일도 아니다. 100여 년 전, 근대 일본에서도 지금처럼 영어 교육이 행해졌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언어 습득의 차원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구 그리고 제국을 맞닥뜨린 일본이 또 다른 제국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도정의 하나였다.
영어와 영문학 속에 숨어있는 것
『제국일본과 영어 영문학』(소명출판, 2014)은 우리 사회에 결여된 ‘왜’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한때 맹목적으로 영어를 공부했고, 그 영어를 가르치는 입장에까지 섰던 저자는 일본에 건너가게 되면서 대학 재학 시절 스치듯 들었던 말을 기억해낸다. 그것은 바로 ‘미제국주의 타도하라’라는 말이었다. 저자에게 영어의 나라 미국을 제국주의와 연결하는 것은 낯선 일이었고, 이에 대한 의문은 곧 ‘왜 영어를 배우는가’라는 질문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일본과 제국주의, 그리고 영어’로까지 이어졌다.
저자는 일본의 근대화와 제국주의화 과정에 영어가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착안해 근대 일본의 영어 교육과 영미 문학 수용 양상을 연구했다. 저자가 가장 먼저 주목한 대상은 오카쿠라 요시사부로라는 인물이다. 그는 근대 일본 영어 교육의 대가로 1930년대까지 영어 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영어 교과서를 통해 ‘대영 제국’의 강대한 힘을 일본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퍼뜨리려고 했다.
교과서가 어느 정도 일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면 잡지는 독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구입하며, 독자가 없다면 지속적 간행이 불가능하므로 편집자만의 가치관이나 사상이 아니라 독자의 가치관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매체이다. 따라서 잡지에는 당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근대 일본에서는 영어를 다루는 잡지가 다수 유행했는데, 저자는 교과서에 이어 당시 수험생들을 위해 간행된 영어 교육이라는 잡지를 분석해 일본이 자신들의 제국주의 행위를 어떻게 포장하고 있는지와 서양을 향한 욕망을 드러내 보인다.
영어 교육만큼이나 제국의 가치관을 퍼뜨리는 데 유용한 것이 바로 ‘영문학’이었다. 영문학은 문명의 중심국인 영국과 미국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영문학을 공유하는 것은 곧 ‘영미 문명’의 공유였고 이것이 일본이 ‘문명국가’, ‘제국’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오카쿠라 요시사부로와 이치카와 산키는 100권에 달하는 '영문학총서'를 간행했다. 저자는 그중 제국문학의 개척자인 키플링과 그의 계승자인 콘래드의 작품에 주목하여 일본에 수용된 영문학이 어떻게 ‘주변국가 일본’을 ‘중심국 영국’으로 근접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했는지를 밝힌다.
3중의 제국 언어 교육
『제국일본과 영어 영문학』은 전전기 일본에서의 영어 영문학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식민지 조선, 더 구체적으로는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영어와 영문학의 위치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로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쳐 보인다. 먼저 당시 조선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의 영어 교육 양상을 살펴보고, 그곳에서 20년간 영어 영문학 주임 교수로 재직한 사토 기요시의 영문학관을 파헤쳐 근대 한국에서 행해진 영어 교육의 내용을 연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했다. 저자가 주목한 사토 기요시는 영국과 아일랜드에 일본과 조선을 겹쳐 놓았는데, 그가 대영 제국에 명확하게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사토 기요시는 외국문학 연구의 목적이 세계정신을 배우고, 이를 통해 일본을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토 기요시의 문학관과 실제 그의 작품을 통해 저자는 경성제국대학의 영문학 강좌에 반식민주의적 사상이 존재했을 것이라 보고 식민지 조선의 영문학 연구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도구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시선이 향한 곳은 사토 기요시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최재서이다. 최재서는 식민지 조선에서의 문학 활동이 일제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상황에 대항하기 위해 ‘혁명’을 ‘선동’한 셸리와 식민지인들의 언론 자유를 주장한 포스터 등의 진보적 영문학자들을 소개했다. 조선인의 입을 통해 의견을 주장할 경우와 달리 외국 작가의 입을 빌려 간접적으로 조선의 상황을 비판하면 일제의 검열에 걸릴 위험이 낮은 점을 이용한 것이다. 저자는 ‘제국일본’을 비판하는 단서를 ‘또 다른 제국’의 문학에서 이끌어낸 상황에 흥미를 가짐과 동시에 ‘영문학’을 통해 조선 전체를 통합하는 ‘조선문학’을 찾고자 했던 최재서가 지성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하게 되는 점에도 주목했다.
왜 영어인가
지금 한국인은 평생에 걸쳐 영어를 배운다. 태어나서 모국어보다 영어를 먼저 습득하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정규 교육 과정은 물론이고 취직 후에도 영어의 굴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늘 ‘배워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떠올릴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영어만’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영어를 배우게 만드는 주체는 누구일까?
‘우리의 영어’를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때, 100여 년 전 일본에서의 ‘영어’를 살펴보는 것은 일견 무의미한 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영어와 영미문학이 일본 제국주의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그 제국의 언어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나간 시대의 영어 교육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영어 교육 현상과 그 숨겨진 본질을 고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언어로서의 영어’와 ‘언어 외의 영어’를 구분하고 그 간극을 파헤치는 이 작업은 우리가 현재의 맹목적 영어 습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목차
서론
제1장 오카쿠라 요시사부로의 언어관 및 영어 교육관
제2장 월간 『영어 연구』(1919~1923)에서 보는 ' 세계의 대세'와 일본
제3장 '제국일본'의 영문학 수용
제4장 경성제국대학에 있어서의 영문학의 위치
제5장 식민지 조선의 영문학자 최재서(1907~1964)의 문학관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