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국 근대소설의 발생과 전개 과정을 차례로 정리하고 그 특질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1890년대 이후부터 1910년대 말까지이다. 근대계몽기라 일컬어지는 한국 근대소설사의 출발 단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기본을 이루는 생각은 문학사 및 문화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매체라는 사실이다. 근대 소설 양식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큰 요인 역시 근대 매체이다. 매체는 작가의 취향보다는 독자의 취향을 고려한다. 그런 점에서 독자 또한 문학사와 문화사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 가운데 하나가 된다. 독자의 역할의 중요성은 근대소설 양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근대 문체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대부분의 여타 소설사와는 달리, 이 책이 작가론을 중심으로 문학사를 구성하지 않고 매체와 양식론을 중심으로 문학사를 구성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작가론에 기대지 않은 매우 보기 드문 한국문학사 저술이다.
한국 근대문학사의 몇 가지 특징
한국 근대문학사의 출발 시기는 1890년대 무렵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현상에 주목한 결과이다. 첫째, 이 시기 이후 한문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고 국한문혼용을 거쳐 한글의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둘째, 신문 등 근대 이후 탄생한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 문학 작품을 발표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들 작품을 유통시키게 된다. 셋째, 전문적인 지식인 작가집단이 탄생한다. 넷째,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작품의 주제가 변화한다. 이는 근대 한국의 사회적 · 정치적 상황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문학 양식의 출현은 언제나 그 시대의 문화 및 사회적 환경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닌다. 한국 역사에서 근대초기는 모든 것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변화하던 시기였다. 사회 제도와 문화 환경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학 관계 또한 수시로 변화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한국의 근대소설은 내용뿐만 아니라 길이와 구성 등 형식적 측면에서도 이러한 환경을 적극 반영하며 성장해 나갔다. 시대적 정황에 맞게 변화하며 성장해 나갔던 것이다.
한국문학사에서 근대의 출발이 가능했던 것은 근대문학 선각자들의 기득권 포기와 관계가 깊다. 근대문학의 선각자들은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 자신들의 출세의 기반이 되는 한문을 버리고 한글을 선택했다. 그들은 한글로 새로운 문학 양식을 시도했다. 새로운 문자를 통한 새로운 양식의 시도는 신문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있기에 가능했다. 매체는 문학과 문화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이야기와 논설의 결합 그리고 분리
한국 근대소설사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전통은 논설 중심 글쓰기이다. 논설 중심 글쓰기의 전통 위에 서사 중심의 글쓰기가 첨가되면서 한국 근대 소설사는 변화되어 갔다. 한국 근대소설사의 전개 과정은 논설과 서사가 결합하고 분리되는 과정이다.
근대문학사 초기 작가의 대부분은 언론인이었다. 그들은 신문의 발행인이기도 했고 편집인이나 주필이었으며 기자이기도 했다. 신문에 발표되는 근대문학 작품들이 전근대문학 작품들에 비해 현실성과 시사성이 높은 소재를 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언론인이기도 했던 근대 작가들의 논설의 의지와 서사라는 형식이 만나면서 한국 근대소설사는 시작된다. 논설과 서사는 여러 가지 형태로 결합한다. 이들의 다양한 형태의 결합이 곧 다양한 근대문학 양식이 된다. 근대문학사 초기에는 논설과 서사의 결합이 강력하고 긴밀하다. 하지만 이들의 결합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느슨해진다.
한국 근대문학 양식의 변화
한국 근대문학사 최초의 서사문학 양식은 〈서사적 논설〉이다. 〈서사적 논설〉은 이야기와 논설이 결합된 문학 양식이다. 〈서사적 논설〉은 신문의 논설란에 주로 실려 있지만 잡보란 등에 실린 경우도 있다. 〈서사적 논설〉에서 편집자적 해설이 사라지면서 〈논설적 서사〉가 시작된다. 〈역사 · 전기소설〉은 외형상 소설을 표방하지만, 글쓴이의 주장을 강하게 담고 있는 문학 양식이다. 〈신소설〉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서사 중심 〈신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논설 중심 〈신소설〉이다.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주류를 이루게 되는 것은 서사 중심 〈신소설〉이다. 1910년대 신지식층의 〈단편소설〉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소설이다. 1910년대 〈단편소설〉은 계몽의 방식이 앞 시기 소설만큼 직설적이지 않다. 이 시기 소설에서는 작가의 계몽의도가 서사 속으로 스며들어 간접화된다. 1910년대 〈단편소설〉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의 내면 심리에 대한 관심이다. 1910년대 〈장편소설〉 「무정」의 탄생은 작가 개인의 역량보다는 그를 활용하려는 『매일신보』라는 매체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장편소설〉 「무정」의 계몽적 효과는 여타 논설들 못지않게 큰 것이었다. 〈장편소설〉 「무정」은 근대 계몽소설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하지만 「무정」은 식민지 시대에 발표된 작품으로서의 부정적 면모 역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계몽의 한계, 그리고 그 이후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매체는 언제나 작가들의 글쓰기 전략과 방식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그런 점에서 총독부 기관지를 발표 무대로 선택한 〈장편소설〉 「무정」이 가는 길에는 처음부터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무정」 이후 등장한 계몽소설들 역시 그 어느 것도 「무정」이 거둔 성과를 넘어서기 어려웠다. 「무정」이 지니는 한계를 식민지 시대 근대문학이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라고 보았을 때, 더 이상의 계몽적 근대를 부여잡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된다.
길이 막힌 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시도는 시작된다. 계몽문학의 길이 막힌 곳에서, 계몽의 문학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진다. 계몽 이후 우리 소설사에서는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1910년대까지의 근대소설사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를 계몽이라고 한다면, 1920년대 이후 소설사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핵심적 단어들은 개성과 자아가 된다.
이 책이 목표로 한 것은 한국 근대소설 양식의 전개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배경 지식 없이도, 이 한 권의 저술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제1장
근대문학사의 시기 구분과 그 특징
1. 근대문학사의 시기 구분
2. 한국 근대문학사의 특징
제2장
근대적 서사 양식의 출발 - ‘서사적 논설’
1. ‘서사적 논설’의 발생과 전개
2. ‘서사적 논설’의 확산
3. ‘서사적 논설’의 변모
4. ‘서사적 논설’의 특질과 문학사적 의의
제3장
근대적 서사 양식의 소설사적 전환 - ‘논설적 서사’
1. ‘논설적 서사’와 무서명소설
2. ‘논설적 서사’의 분석
3. ‘논설적 서사’의 특질과 문학사적 의의
제4-1장
근대적 소설 양식의 새로운 유형 - ‘역사ㆍ전기소설’
1. ‘역사·전기소설’의 개념
2. ‘역사·전기소설’의 형성 과정
3. ‘역사·전기소설’의 특질과 면모
4. ‘역사·전기소설’의 문학사적 의의
제4-2장
‘역사·전기소설’의 새 단계 - 신채호의 소설들
1. 신채호의 생애
2. 연구사 개관
3. 신채호의 문학관
4. 「꿈하늘」
5. 「용과 용의 대격전」
6. 신채호 소설의 의미
제5장
근대소설의 정착 - ‘신소설’
1. ‘신소설’의 개념과 특질
2. ‘신소설’ 연구의 진행 과정
3. ‘신소설’ 발생의 여러 요인
4. 서사 중심 ‘신소설’
5. 논설 중심 ‘신소설’
제5장 보론
「혈의루」 하편의 위상과 의미
1. 「혈의루」 하편의 발굴과 논점의 대두
2. 「혈의루」 하편의 등장 배경
3. 「혈의루」 하편의 작가 문제와 중단 사유
4. 「혈의루」 하편의 위상
제6장
근대소설의 완성 1 - 1910년대 ‘단편소설’
1. ‘단편소설’ 등장의 배경
2. 연구사 개관
3. 1910년대 ‘단편소설’의 네 유형
제6장 보론
『매일신보』의 ‘단편소설’ - 신년소설
1. 근대 신년 ‘단편소설’의 출현
2. 매일신보 신년 ‘단편소설’의 전개
3. 현상 응모 ‘단편소설’과 신춘문예
4. 신년 ‘단편소설’의 위상과 의미
제7장
근대소설의 완성 2 - 1910년대 ‘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