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92년에 출판된 사쿠라이 요시유키(櫻井義之)의 『조선연구문헌지: 쇼와편(유고) 부 메이지·다이쇼편 보유(朝鮮?究文?誌:昭和篇(遺稿)付明治ㆍ大正篇補遺)』를 번역한 것이다. 분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상중하 3권으로 나누어 번역할 예정이며, 우선 상권을 먼저 출판한다.
저자 사쿠라이 요시유키는 1904년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소학교 교장을 지냈던 지역의 명망가 집안이었다. 주오대학(中央大學) 경제학과에 다니면서 도쿄제국대학 법학연구실에 자주 출입했다. 특히 저명한 정치학자 요시노 사쿠조의 귀여움을 받았으며, 대학 졸업 후 1928년 경성제국대학 조수로 옮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사쿠라이는 법문학부의 시카타 히로시 밑에서 경제사를 공부하면서 1933년부터 조선경제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이때 시카타를 도와서 조선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담당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서적들은 당시 연구소에서 서지사항을 연구하면서 얻은 정보들에 기반하고 있다. 자료의 양과 질 어느 면으로 보아도 당시 조선경제연구소가 자료수집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사쿠라이는 패전 이후 자신들이 수집했던 책을 그대로 조선에 둔 채 일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시카타가 수집했던 책은 서울대학교 도서관 ‘경제문고’로 이관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쿠라이가 수집했던 책의 행방은 알기 어렵다. 현재 일본의 도쿄경제대학에는 ‘시카타 히로시 조선문고’와 ‘사쿠라이 요시유키 문고’가 있는데, 시카타 문고에는 약 4천 점, 사쿠라이 문고에는 약 1천 8백 점의 서적 및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시카타와 사쿠라이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일본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관련 서적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 작업이 현재의 방대한 문고로 이어졌다. 자료에 대한 그들의 무서운 집념이 느껴진다. 1974년에 설립된 사쿠라이 문고에는 그간 강만길, 신용하, 안병직 등 저명한 연구자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사쿠라이는 조선총독부의 보물고적명승기념물 보존회, 조선박물관, 이왕가 미술관 등에 관여했던 오쿠히라 다케히코, 그리고 유진오와 매우 친하게 지냈는데, 특히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유진오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1937년부터는 ‘경성 서물동호회’의 간사를 맡아 패전으로 중단될 때까지 참가했다. 서물동호회에는 아유가이 후사노신, 이마무라 도모, 기쿠치 겐조 등이 있었는데, 제국대학에서 아카데미즘 역사학의 훈련을 받지 않았던 이들 ‘조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서지학적 연구를 본격적으로 경험했다. 패전 이후에는 서물동호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제국대학 출신의 연구자들(후지타 료사쿠, 스에마쓰 야스카즈, 다가와 고조)과 함께 ‘도쿄 서물동호회’의 재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제국일본이 행한 식민지 조사의 축적과 경험 위에 작성되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시기에 사쿠라이는 경성제대 연구실 한편에서 그간 수집한 조선관련 문헌을 쌓아놓고 이를 하나하나 펼쳐보며 그 서지사항과 중요한 특성을 원고지에 옮겨 적는 작업을 매일같이 행했을 것이다. 그 느리지만 켜켜이 쌓여가는 원고지의 무게야말로 식민지를 짓누르는 제국의 학문적 권위에 다름 아닐 터이며, 긴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 무게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는 이러한 무게와 압박을 정면에서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여 이 책을 번역했다. 총기, 철학, 종교, 역사, 지지 등으로 분류된 서적의 목차와 소개는 관련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자료집이지만, 색인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근대 일본의 조선연구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다양한 문제의식들이 추출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