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30년 3월에 창간된 잡지 『대조(大潮)』에 대한 연구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대조(大潮)』잡지에 대해 개괄적 정리를 한 선행 연구가 놓친 점들을 짚어 기본 서지를 새롭게 정리하고, 이 잡지의 발간 주체의 면면과 역할 및 발간 목적과 편집 방향을 탐색하여 그 의의를 정리하는 것이다.
『대조(大潮)』는 1930년 9월에 발간된 6호가 종간호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검열 자료에는 8호까지 나와 있어, 7호와 8호도 발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편집 및 발행인도 기존에는 전무길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판권지를 보면 1~5호는 ‘전무길’로, 6호부터는 ‘이병조’로 나와 있다. 기자 및 특파원으로 활동한 이로는 ‘최용도’, ‘동세현’, ‘최석환’ 등이 있다. 이들은 청년운동, 독립운동 등을 해 온 인물들이다. 이들의 출신 지역 및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영업 전략과 활약을 통해 광고를 다수 확보하고 각 지역에 지사를 설치하는 등 ‘대조사’는 사세 확장을 해 나갔다.
『대조(大潮)』는, 당시의 ‘문화’가 정체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신문화 창성’을 목적으로 발간한 잡지이다. 『대조(大潮)』가 추구한 편집 방향의 큰 줄기는 조선인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자각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문화를 형성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 문제들에 대한 논란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담론을 형성해 갔다. 현재 확인 가능한 6호까지 약 60여 명의 필진은 어느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았다. 명망 있는 필자를 섭외하여 전략적 홍보를 하기도 하지만, 신진 학자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알리는 데 주력하기도 하였다. 관심 분야 역시 사회과학, 자연과학, 의학, 종교, 예술 등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사회 관심사를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문화의 새바람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층 강화된 일제의 검열로 인해 기획한 대로 원고가 게시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출간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대조(大潮)』는 비교적 길지 않은 기간에 발간호마다 매진되는 등 호응은 좋았으나, 검열 등의 현실 문제에 부딪혀 결국 목적한 바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단명한다. 1930년에 창간된 종합 잡지 『대조(大潮)』의 발간 상황과 명멸 과정은 근대의 출판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단적인 사례이다.
This is a study on the magazine “DAE CHO(大潮)”, which was first published in March 1930. In this study, by examining the points missed by previous studies that summarized the magazine “DAE CHO”, the basic bibliography was newly organized, and the aspects and role of the publisher of this magazine, the purpose of publication and the editorial direction were explored.
It is known that the 6th issue of “DAE CHO”, published in September 1930, was supposedly the last issue, but the censorship data showed up to the 8th issue, so it is assumed that the 7th and 8th issues were also published. The editor and publisher were previously known only as ‘Jeon Mu‐gil’, but if looking at the copyright paper, issues 1 to 5 are listed as ‘Jeon Mu‐gil’ and from Issue 6 as ‘Lee Byeong‐jo’. Those who worked as reporters and correspondents include ‘Choi Yong‐do’, ‘Dong Se‐hyeon’, ‘Choi Seok‐hwan’ and others. These people are figures who were involved in the youth movement and independence movement. Through sales strategies and activities based on their region of origin and human networks, the publishing company continued to expand its business by securing a large number of advertisements and establishing branches in each region.
“DAE CHO” is a magazine published for the purpose of ‘creating a new culture’ after diagnosing that the ‘culture’ of the time was stagnant. Writers did not lean towards any one wing of either right or left. Although they recruited reputable writers to do strategic publicity, they also focused on promoting the new research achievements of emerging scholars. Their fields of interest also spanned many fields, such as social sciences, natural sciences, medicine, religion, and the arts, etc. They were intended to create a new wind of culture while comprehensively addressing social concerns. However, the manuscripts failed to be published as planned due to the stricter censorship of the Imperial Japan at the time. As a result, the publication date may have not been adhered to properly. The magazine “DAE CHO” is short‐lived and did not produce their results as inte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