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都市史)로서 ‘원주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다! 이 책은 강원도 ‘원주’를 소재로 도시사(都市史)의 새로운 서술 목표와 서술방식을 모색한 책이다. 20세기가 국가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도시의 시대이다. 교통, 통신, 정보의 발달로 주민들이 어떤 사안이건 직접 참여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어서 다문화적이고, 창의적이며 실용성을 가장 많이 담보한 도시와 도시 네트워크가 21세기 전지구적 협력의 기본 단위이다. 21세기 도시의 시민/주민은 꼭 국가/민족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세계와 교류하면서 스스로의 문화를 만들고 향유해 갈 것이다. 도시가 주체가 되어 전지구적 관계를 맺었던 시기는 21세기뿐이 아니었다. 삼국시대 원주, 남북국시대 원주, 고려시대 원주라는 천오백년 역사의 원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천하(세계) 수준과 국가 수준에서 문화교류부터 행정교류까지 진행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제1편 삼국~고려시대 원주지방사의 전개, 제2편 북원경(북원부)의 불교문화, 제3편 고려전기 대장경연구의 전통과 원주, 제4편 원주문화재 환수운동과 원주 폐사지의 세계유산적 가치 등 모두 네 편으로 나누어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라는 중세 성립 전·후기의 원주 주민들의 동향과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화적 가치, 그리고 남한강 불교계의 활동과 역사적 의의를 서술하고자 하였다. 제1편에서는 원주 법천리 고분군의 유물 분석을 통해 4세기까지의 원주(일화국원주) 주민과 마한·백제, 중국과의 관계를 설명한 다음, 중원 고구려비에 나타난 고모루성(평원군원주)의 활동모습, 남북국기 신라시대의 북원경 원주의 통치구조와 나말여초기 원주, 고려시대 지주관 원주, 지주사 원주, 일신현 원주, 성안부 원주, 원주목 등 다양한 시대의 여러 활동에 대해 서술하였다. 특히 고려시대 원주 읍사(邑司)가 속관(屬官)과 토관(土官=鄕職), 주리(州吏=鄕吏職)으로 나누어 활동했음을 밝힘으로써, 중앙의 지배와 함께 지방의 자율 양상을 잘 설명함으로써 집권(集權)적 봉건국가의 양상을 잘 설명할 수 있게 된 점은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제2편에서는 고달사, 흥법사, 법천사, 거돈사, 정토사, 비마라사, 흥녕사 등 원주를 둘러싼 남한강 유역에 소재하고 있는 여러 폐사지의 역사와 문화를 서술하였다. 특히 기왕의 불교사 연구와 관점을 달리하여 각 절의 승려들, 곧 흥법사 충담의 인도불교사 연구, 고달사 현욱과 찬유, 거돈사 도헌, 정토사 현휘의 중국 불교사 연구 성과와 의미를 계통화한 후, 흥법사 충담비를 쓴 고려 태조 왕건의 중국풍과 고려풍을 섞어 쓴다는 ‘당이상잡(唐夷相雜)’적 자세와 고달사 심희의 불법동류, 법천사의 해동법상의 정립과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정치에 예속되는 종교가 아니라 세계사 속의 불교와 한국사 속의 불교, 양자 간의 관계를 규명한 점은 남다른 연구 성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제3편에서는 거돈사 지종의 천태학 연구와 법천사 해린의 법상종 불경 연구를, 고려 문화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는 대장경 연구 및 간행과의 상관성을 살펴보았다. 먼저 고려 광종의 대장경 연구 후원에 대해 승려 긍양을 중심으로 알아보았는데, 고려 광종은 중국 오월왕 전홍숙의 요청을 수용해 960년(광종 11) 제관을 오월에 보내면서, “천태종 관련 책자 모음집(교승[敎乘]) 가운데, 지론소(智論疏), 인왕소(仁王疏), 화엄골목(華嚴骨目), 오백문론(五百門論)은 가지고 가지 말고, 나머지 지니고 간 천태 관련 서적들도 오월의 유명 학승들에게 물어 관련 책자 모음집의 진가를 알지 못하면 도로 가지고 오라”고 명할 정도로, 불교경전에 밝은 인물이었다. 제관이 쓴 『천태사교의』가 중국 천태 승려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마련된 강의안이었다면, 마하지관을 강의한 거돈사 지종도 그에 관한 강의안을 고려에서 준비하고 갔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후 현종 때 시작한 초조대장경과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도 이러한 대장경 연구와 간행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제4편에서는 서울로 간 원주 문화재 환수운동과 원주의 세 폐사지 유적과 출토 유물의 세계유산적 가치에 대해 서술하였다. 현재 남북한의 국립박물관은 각각 14곳과 13곳이라고 한다. 중국이 1곳, 일본이 4곳의 국립박물관이 있는 것을 상기해 보면, 앞으로 박물관 건립 정책은 국립보다는 국비, 도비, 시비, 군비, 구비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도립, 시립, 군립, 구립 박물관의 확대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원주 문화재 환수운동은 21세기 박물관 건립과 이용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된 글이다. 이와 함께 원주 세폐사지는 기왕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개경역사지구와, 해인사장경판전, 팔만대장경과 불조직지심체요절 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필요가 있음을 정리하였다. 특히 “신영보찰(新營寶刹) 이도리지천궁(移覩吏之天宮) 경조금언(敬造金言) 실구나지해장(悉拘那之海藏)”이라는 해린 승탑비의 구절은, 70세(문종 8)의 해린이 현화사로 이주하여 왕실의 재정 지원으로 도솔천의 천궁을 옮겨 놓은 듯한 건물을 하나 지어놓고, 그 건물 안에 실로 ‘구나(拘那, 카나카무니불, 과거 칠불의 하나)의 해장(海藏=비로해장, 비로자나, 광명변조)’이라 할 만한 부처님의 말씀[金言]을 삼가 새겨 넣은 경판을 만들었다는 상황을 묘사한 글귀인데, 흥법사 충담의 인도불교사 연구, 거돈사 지종의 고려 천태학 연구성과의 오월 수출, 삼교를 융합한 인물(심융정교[心融鼎敎])인 신라 경문왕의 후원에 따라 활동한 거돈사 지증 도헌, 해동 법상종의 계통을 세운 법천사 해린 등의 활동 내역을 보면, 고려 최고의 문화유산인 초조대장경이나 팔만대장경이 어느 한 순간에 된 것이 아니라 꾸준한 불경 연구와 간행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원주 세 폐사지의 세계 문화유산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책이 고ㆍ중세 원주의 행정적 위치, 문화적 위치를 중심으로 21세기 세계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는 도시, 그 가운데 원주를 소재로,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이었던 고ㆍ중세 중화세계문화, 그리고 삼국과 남북국, 후삼국과 고려로 이어지는 국가문화와의 교류와 소통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조그마한 해답이 되기를 기대한다.
목차책머리에
서론 : 원주 지방사를 보는 관점과 방법 Ⅰ. 일방적 관점에서 주체적·관계적 관점으로의 변화 Ⅱ. 21세기 지방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 Ⅲ. 고·중세 원주문화 연구 방법의 모색
제1편 삼국~고려시대 원주지방사의 전개
제1장 법천리 고분군과 중원고구려비를 통해서 본 삼국시대 원주原州와 백제ㆍ고구려와의 관계 Ⅰ. 문제의 제기 Ⅱ. 법천리 고분군을 통해 본 마한·백제와의 관계 1. 일화국과 6호 토광묘주의 마한·백제내 위치 2. 1·2호분 석실분 조성세력과 백제와의 관계 Ⅲ. 중원 고구려비를 통해본 평원군과 고구려와의 관계 Ⅳ. 맺음말
제2장 신라 통일기·나말여초 북원경과 북원부 Ⅰ. 머리말 Ⅱ. 7~8세기 북원경北原京의 설치와 운영 Ⅲ. 9~10세기 후반 북원부北原府 정치세력의 동향과 불교계의 역할 1. 9세기 북원부의 설치와 정치ㆍ불교계의 동향 2. 10세기 전반 정치세력의 동향과 불교계의 역할 Ⅳ. 맺음말
제3장 나말여초 사회변동과 후삼국 Ⅰ. 머리말 Ⅱ. 주군州郡의 반부叛附와 신라 나마奈麻 영기令奇의 공포심 Ⅲ. 사회 변동의 주인공들 : 호족층豪族層, 호부층豪富層 Ⅳ. 미완의 왕조국가 건설자들 : 후백제 견훤 정권과 태봉 궁예 정권 Ⅴ. 맺음말
제4장 고려시대 원주의 행정체계와 원주인의 동향 Ⅰ. 고려 건국기 원주의 역사 지리적 배경 Ⅱ. 고려 전기 원주의 지배구조와 행정체계 1. 태조~성종 대 원주의 지배구조와 행정체계 2. 현종~원종대 군현정책과 원주민의 대응 Ⅲ. 고려 전기 지방지배층의 동향과 문화의 특성 1. 지방지배층의 동향 2. 원주문화의 특성 Ⅳ. 고려 후기 원주의 지배구조와 행정체계 1. 고종~충렬왕 대의 주격州格 변동 2. 충선왕대 원주목ㆍ성안부로서의 주격 州格 변동과 원주민의 대응
제5장 1291년 카단哈丹의 치악성 침입과 원충갑의 항전 Ⅰ. 머리말 Ⅱ. 외적의 침입과 치악성의 항전 1. 거란 잔적殘賊의 침입과 원주의 대응 2. 몽골의 5차 침입과 원주의 대응 3. 카단哈丹의 침입과 원주의 대응 Ⅲ. 카단적의 침입과 원주의 항전 방식 1. 산성전투의 방법 2. 카단적의 침입과 원주의 군제 편성 Ⅳ. 맺음말
제2편 북원경(북원부)의 불교문화
제6장 비마라사와 세달사 Ⅰ. 머리말 Ⅱ. 의상계 화엄사상과 비마라사 Ⅲ. 세달사(=흥교사)의 유명 승려와 경제력 Ⅳ. 맺음말
제7장 나말여초 거돈사 승려의 활동 - 지증 도헌과 원공 지종을 중심으로 Ⅰ. 문제의 제기 Ⅱ. 지증 도헌과 거돈사 Ⅲ. 원공국사 지종의 생애와 거돈사 Ⅳ. 맺음말
제8장 흥법사 선사(禪師) 충담(忠湛, 869~940)의 생애와 충담비 마멸자(磨滅字) 보완 수용 문제 Ⅰ. 문제의 제기 Ⅱ. 충담의 봉림산문 소속여부 Ⅲ. 태조 왕건이 충담 비문을 직접 작성한 이유 Ⅳ. 충담의 생애와 활동 Ⅴ. 맺음말 Ⅵ. 원문, 번역문 및 각주
제9장 고달사 학풍의 불법동류佛法東流와 부동선원不動禪院 Ⅰ. 머리말 Ⅱ. 고달원 1기 : 현욱 그리고 심희의 불법동류佛法東流 Ⅲ. 고달원 2기 : 찬유와 부동선원不動禪院 Ⅳ. 맺음말
제10장 충주 정토사 현휘玄暉와 영월 흥녕사 절중折中-고려 혜종대 정변과 관련하여 Ⅰ. 서론 Ⅱ. 현휘의 활동과 음기에 실린 세력 Ⅲ. 절중의 활동과 음기에 실린 세력 Ⅳ. 맺음말
제3편 고려전기 대장경연구의 전통과 원주
제11장 선사禪師 긍양兢讓(878~956)의 생애와 대장경大藏經 Ⅰ. 서론 Ⅱ. 출가와 유학 생활 Ⅲ. 귀국과 국내 활동 1. 귀국 초기 신라 왕실과의 관계 2. 고려왕조 성립기 긍양(兢讓)과 고려 왕실과의 관계 Ⅳ. 맺음말
제12장 김부식과 박호ㆍ임존의 의천 평가 Ⅰ. 머리말 Ⅱ. 영통사비靈通寺碑 사적기事跡記의 분석 1. 묘실墓室, 제당祭堂, 경선원敬先院과 비석碑石의 조성 2. 윤관尹瓘의 찬명撰銘 여부與否와 두 비의 찬명撰銘 배경 Ⅲ. 박호ㆍ김부식ㆍ임존의 의천 평가 1. 박호朴浩의 평가 2. 김부식金富軾의 평가 3. 임존林存의 평가 4. 사대업四大業과『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Ⅳ. 맺음말
제4편 원주문화재 환수운동과 원주 폐사지의 세계유산적 가치
제13장 20세기말~21세기초 원주지방의 문화재 환수운동과 복원ㆍ재현사업 Ⅰ. 머리말 Ⅱ. 환수운동에서 재현ㆍ복원사업까지 Ⅲ. 환수운동 및 재현ㆍ복원사업이 던진 몇 가지 고려 사항 1. 재현ㆍ복원사업에 관하여 2. 원주지방 문화재 환수운동의 재음미 Ⅳ. 맺음말
제14장 원주 폐사지의 세계 유산으로서의 가치 Ⅰ. 침략전쟁을 평화인문학으로 대처한 세계 유일의 각경刻經사업 Ⅱ. 각경 사업과 원주폐사지 해린·지종·충담의 활동 1. 법천사 해린 승탑의 보여와 승탑비의 ‘敬造金言’ 2. 거돈사 원공 지종의 마하지관 강의 3. 흥법사 진공 충담의 인도불교사 연구 Ⅲ. 주체적 세계화의 산실로서의 원주 폐사지 Ⅳ. 맺음말 : 원주 세 폐사지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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