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각』은 어떤 책인가? 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조선시대 사또들의 모습이 무능하거나 제멋대로 백성을 다스리는 탐관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는데 실제 모두 그랬다면 과연 조선사회가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었을까? 사또들도 나름의 행정지침 매뉴얼들이 있지 않았을까?
중앙집권국가였던 조선은 초기에 중국에서 만들어졌던 목민서들이 유입되어 읽히고 간행되어 유포되었다. 『목민심감』을 비롯한 이들 책은 비록 조선의 사정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관료로서 살아감에 갖추어야 할 도덕성이 무엇이고 정치에서 유의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료 혹은 수령들이 국정을 수행함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책에는 조선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요소가 많았기에 그 보급과 활용에 제한이 생겼다. 그러므로 조선의 현실을 보다 적실하게 반영한 책이 필요했다. 조선 사람이 직접 지은 책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조선후기인 18세기에 들어 『목민고』, 『거관대요』, 『선각』, 『목민대방』, 『임관정요』, 『목민심서』, 『목강』 등 다양한 형태의 목민서들이 만들어져 활용되었다. 『선각』은 이들 목민서 가운데 하나다. 편자는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목민서는 수령이 지방을 통치함에 참고하기 위하여 만든 지침서로 대체로 ‘수령칠사(守令七事)’로 규정된 수령의 고유 업무를 기반으로 하여 수령이 지방을 다스리는 데 갖추어야 할 공직자로서의 마음가짐, 행정기술과 방침 등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책 이름 ‘선각’은 『맹자』에 실린 이윤(伊尹)의 말을 빌린 것으로, 남보다 먼저 세상의 이치 혹은 도를 깨친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으며, 자연히 이 인물은 뒤에 오는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었다. 책의 이름을 이 같이 지은 것은 수령이란 지위를 단순히 지방 행정가 수준으로 생각하지는 않겠다는 편자의 의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편자는 아마도 한 시대의 문화를 앞장서서 개척하고 이끌어 간다는 계몽적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을 것이다.
『선각』은 언제 출현했을까? 책의 등장 시기는 1794년(정조 18) 무렵으로 추측된다. 사실에 가깝다. 서문이 이때 작성되었다고 해서 『선각』 또한 같은 시간에 만들어졌다고 반드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이때에 이 책이 그 틀을 갖추었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서문에서 ‘갑인년 9월 9일’에 썼다는 기록, 그리고 본문에서 『흠휼전칙(欽恤典則)』 기사를 원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본 판단이다.
『선각』의 구성과 내용 『선각』은 상ㆍ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은 ‘선각’이란 제목 하에 60개 항목에 걸쳐 수령에게 요구되는 지적 능력과 도덕적 태도,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법과 그 논리 등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각 항목은 ‘입지절(立志節)’과 같이 한결같이 3자구(字句)를 사용, 주제를 이끌었다. 하권에서는 「추록(追錄)」, 「첨록(添錄)」이라는 이름으로 군정, 전정, 환곡 등 지방 행정의 실제 업무를 수행함에 필요한 사항, 수령칠사에 대한 문답을 기록하였다. 「추록」과 「첨록」은 그 의미상 ‘추가로 보완한 기록’, ‘다시 덧붙인 기록’의 뜻을 지니고 있다. 「추록」은 조적(??:20조), 전정(田政:10조), 군정(軍政:16조), 문장(文狀:28조), 면세(免稅:6조), 양전(量田:8조), 시노(寺奴:2조), 치도(治盜:3조), 호적(戶籍:2조), 총론(總論:25조)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실린 글 가운데 일부는 『목민고』 등 조금 앞선 시기에 나와 유통되었던 다른 목민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첨록」은 각종정례(各種定例), 수령칠사문답(守令七事問答), 칠사제요(七事提要), 칠사강령대지(七事綱領大志) 등을 실었다. 세 편의 글은 제목과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수령칠사’를 강조하는 편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수령칠사는 조선의 수령이 해야 할 주요 사항을 일곱 가지로 정리해둔 법적 규정이었다. 이렇게 구성된 『선각』은 외견상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책을 하나로 묶어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상권이 원론의 성격을 가진다면, 하권은 실무 행정지침과 같다. 그러나 두 내용 모두 수령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기에, 편찬자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다루었다. 요컨대 『선각』은 여러 이질적인 자료를 활용하고 종합하며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선각』에 있는 여러 자료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제일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중국 명대의 지방관이 만든 것을 들여와 조선에서 활용했던 『목민심감』이다. 『선각』에 실린 ‘선각’ 60항목은 대부분 『목민심감』의 제목과 내용에서 왔다. 『선각』의 필자는 『목민심감』에서 필요한 항목만 임의로 추렸으며, 항목이 담고 있는 내용도 원문을 요약하거나 아니면 원문에 없는 것을 첨가하여 재구성했다. 이때 새로이 들어간 내용은 조선사회의 현실을 직접 반영하고 있다.
『선각』을 구성하는 또 다른 자료는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편지였다. 서문에는 이 편지에 실린 내용이 이원익이 그의 생질 이덕기(李德沂)에게 써준 41개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원익이 이덕기에게 보낸 것과 무진년에 손자 이수약(李守約)에게 부친 조항 두 종류가 섞여 있다. 또 두 편지에 없는 내용도 있다. 이 편지 자료는 유능한 관료 이원익이 지방행정에 대해 지니고 있던 생각이 무엇인지,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어떻게 활용했던가를 파악함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이 시기 유통되던 『목민고』 등 다른 목민서의 자료 또한 활용하였다. 하권에 실린 「추록」과 「첨록」은 대부분 여러 자료를 모아 편집한 것이다. 『선각』은 필사본으로 된 이본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만큼 이 책이 널리 유통되며 활용되었다는 증거다. 각 필사본은 체재 구성 및 싣고 있는 내용 등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책의 이름도 한결같지 않아, 『선각록(先覺錄)』, 『순리보감(循吏寶鑑)』, 『백리장정(百里章程)』, 『수치정요(修治精要)』, 『거관요람(居官要覽)』, 『칠사문답(七事問答)』, 『정요(政要)』, 『이치정람(吏治精覽)』 등으로 되어 있다.
이같이 다양한 이본이 존재하는 것은 저본이 되는 한 책이 출현한 뒤, 이 책을 등사하고 또 필요에 따라 내용을 첨가하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책의 이름이 달라지고 구성상의 변화가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할지라도 내용상 한결같이 ‘선각’을 강조하는 점에서 이들 여러 이본은 묶어서 ‘선각’류 목민서라 해도 좋을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선각’은 『목민심감』의 항목을 활용, 수령 업무의 핵심을 3자어(字語)로 추려서 정리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선각』 간행의 역사적 의미 『선각』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이 책의 상권은 『목민심감』의 내용을 활용하고 편자의 생각을 보태어 재구성하였다. 『목민심감』의 전 체재와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매 항목마다 『목민심감』의 주제와 문제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 사실은 『선각』이 조선 초부터 지방 수령들의 주요 참고서로 활용되고 있었던 『목민심감』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잇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의 현실에 맞지 않는 내용은 버리고 새로운 내용으로 채웠지만, 『선각』은 『목민심감』의 한 변형태였다. 그런 점에서 『선각』은 『목민심감』이 진화한 한 양태이기도 했다.
둘째, 이 책은 이원익의 편지 글과 『목민심감』의 주제를 상호 결합하여 구성하였다. 이것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조선의 지방 행정운용의 경험으로부터 체득한 내용을 『목민심감』과 같이 묶음으로써, 『목민심감』의 주제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고, 소소한 지방 행정의 지침을 이론적으로 한 단계 심화시키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사회에서 16세기 말까지는 『목민심감』에 기초하여 지방 수령이 지방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와 능력을 고민하고 준비하였다면, 이 책은 조선 행정가의 목소리를 빌려 지방관을 위한 독자적 자료를 만든 결과라 할 것이다. 『목민심감』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여기에 이 『선각』의 기본적인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 책의 하권은 전정, 군정, 환곡 등 18세기 지방 사회에서 실제로 실행되고 있었던 행정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담고 있다. 넷째, 이 책은 18세기에 나온 ‘선각’류 계통 목민서의 최고 완성태로, 여타의 목민서와는 다른 부류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8세기 말에 편찬된 수령의 행정 지침서 『선각』은 여타의 여러 목민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기 지방 행정의 이념과 실제를 잘 담고 있다. 이들 목민서가 이때에 대거 출현한 것은 국가 혹은 지방 사회가 수령들로 하여금 그들이 정치ㆍ행정ㆍ군사 상으로 해야 할 역할과 기능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전반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만들어지고 다른 목민서들이 나타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의 일이었다.
그동안 『선각』은 한국사 연구자들이 가끔씩 연구 자료로 활용하긴 했지만 전면적인 번역이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자세한 해제와 역주를 더하여 꼼꼼히 번역한 이 책은 조선 사회를 좀 더 세밀하게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조선후기 목민서의 번역·발간에 붙여 『선각(先覺)』 해제 1. 조선후기 ‘선각’류 목민서의 출현 2. ‘선각’류 목민서의 이본과 이본별 체재 구성 3. 번역본 『선각』의 구성과 내용 4. 번역본 『선각』의 특성 선각 서문[先覺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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