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성을 밝히는 것을 주 과제로 삼고 있는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의 근대한국학총서 124권인 〈역사의 일요일, 역사 이후의 일요일〉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대표 작가인 박태원, 염상섭, 이광수, 이상, 김남천 등의 주요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식민지 근대의 형성과 그 다양한 양상을 살핀다. 왜 식민지 시대의 텍스트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역사의 일요일, 역사 이후의 일요일’이라는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의 표제가 된 2부 1장에서는 김남천, 채만식, 이효석의 텍스트에서는 일요일을 보내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일요일을 시민생활의 특권이라 주장하며 외출을 즐기는 준보(?일요일?), 집에서 쉬고 싶으나 가장으로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영섭(?순공 있는 일요일?), 한때는 사회 운동을 했으나 전향하여 이제는 봉급생활자가 된 경덕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속요?) 등, 이들의 일요일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일요일은 모두 식민지 시대라는 역사적 상황과 닿아있다. 준보와 영섭에게 일요일은 과거가 과거일 뿐이며 지금과는 다름을 인정하는 역사적 위치이다. 직업적 일상의 리듬이 정지된 대신 시대의 변천이 표시되는 정신적 계기이자 현재 생활에 대한 반성의 장이다. 각각 일요일에 문오와 연이라는 옛 인연의 죽음을 통보받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청년에서 벗어나 ‘어린 세상을 그리는’ 임무를 지닌 아버지로 변모한다. 한편 왕년의 사회주의자 경덕과 기독교 신자인 아내는 서로를 힐난하지만 이들의 일요일은 별반 다르지 않다. 경덕의 공일은 전향을 하여 봉급생활자가 됨으로써 얻게 된 것이며, 아내의 주일은 불미스러운 기사의 주인공이 된 유명 기독교 신자의 것이기도 하다. 즉 사회운동과 기독교의 현실은 모두 이상과 동떨어져 있는 동병상련의 처지인 것이다. 이처럼 위 인물들의 일요일은 역사의 균질적인 코스로부터 해방될 것을 약속하는 휴일은 아닌 듯 하다. 그것은 신 앞에 자기 자신을 겸허히 내려놓는 부정의 일요일(Sunday of the Negative)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을 포기하는 부정적인 일요일(negative Sunday)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식민지 시대가 있다. 요컨대 일요일이란 한 주의 분기점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전환점으로, 등장인물들의 생활 기저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식민지 상황이다. 문오와 연이의 부고를 들은 준보와 영섭이 의무를 띤 아버지가 된 연유도, 경덕이 전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식민지라는 배경과 무관치 않다. 저자가 식민지 시대의 텍스트에 천착한 것은 이처럼 곳곳에서 발견되는 ‘그루미 선데이’의 그림자 때문이다.
목차
들어가는 글
1부 1장 어머니를 가르친 딸-[혈의 누]라는 어학교 1. 고장팔과 호텔 뽀이 2. 옥련 어머니의 위치 3. 바바소리ㆍ까마귀소리ㆍ총소리 4. 번역과 유서 5. 상처와 이별의 음성중심주의
2장 식민지의 돈 쓰기-민족과 개인, 그리고 여성 1. 유학과 망명 2. 공짜 유학의 풍속 3. 가문의 증여, 민족의 증여 4. 산타클로스와 볼셰비키 5. 소설가 구보 씨의 빈처 6. 식민지의 기둥서방들
3장 하숙방과 행랑방-근대적 주체와 사회적 감수성의 위치에 대한 일고찰 1. 게슈쿠下宿와 하숙 2. 하숙방의 도약 3. 행랑방과 행랑것 4. 33번지의 고향, 도시의 해수욕장
4장 문자의 전성시대-염상섭의 〈모란꽃 필 때〉에 대한 일고찰 1. 영자와 봉자 2. 명랑한 숙자 3. 혼혈아 문자 4. 모델과 스파이 5. 가나이 후미코와 가네코 후미코
5장 긴자銀座의 추억-식민지 조선의 근대문학과 일본 1. 혼부라와 긴부라 2. 시장으로서의 일본 3. 아지노모토와 몸뻬
2부 1장 역사의 일요일, 역사 이후의 일요일-김남천ㆍ채만식ㆍ이효석의 경우 1. 일요일의 아버지들 2. 공일과 전향자 3. 주일의 유행가, 공일의 찬미가 4. 태평양과 어린 양 5. 나는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