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언어’, 불온
저자는 1960년대 한국사회에서 불온이 ‘권력의 언어’(통치의 언어)인 동시에 ‘문학의 언어’(비평의 언어)이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시대에는 불온시 논쟁이 있기도 했거니와, 많은 작가들이 권력과 문학의 노이로제에 대해 성찰하며 문화ㆍ예술의 본질로서의 불온성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따라서 본문에는 김수영, 안수길, 신동엽, 남정현, 김지하, 신동문 등 일군의 작가들이 시도했던 불온한 문학과 그들의 사유를 담았다.
이 시기 문인들은 리처드 포이리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사적으로, 익살을 떨면서, 패러디를 반복하면서, 방언의 에너지가 인가된 전문용어들에 대항하도록 하면서” 권력에 대해, 자기에 대해, 그리고 시대에 대해 기술(記述)하고자 했다. 그들이 쓴 글들은 언어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이견(異見)을 등록할 수 있는 장소”일 수 있었던가를 일깨운다.
명랑사회와 그 적들, ‘공산주의’와 ‘빈곤’
1960년대 한국사회에서 공산주의와 빈곤은 가장 위험한 내부의 위협으로 지목되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한 내부의 적(敵)에 대한 정치적 상상을 매개하여 통치의 방식과 논리를 재정비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불온하다는 말 역시 내부의 잠재적 적들을 감식하고 규정하는 장치로 동원되었다. 시민의 얼굴을 한 간첩이라는 권력의 언설은 필화사건과 공안사건을 매개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이 시기 본보기 처형들은 무엇이 불온하고 무엇이 불온하지 않은지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새롭게 조정되는 데 관여했다. 또한 이 와중에 적화될 소지가 가장 높은 집단으로 분류되었던 존재는 다름 아닌 ‘학생’과 ‘빈민대중’이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불온한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를 두 청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1960년대의 시작과 끝에 놓여 있었던 김주열의 죽음과 전태일의 죽음은 한 개인의 삶 속에서 진행된 개인적 사건인 동시에, 집합적 죽음을 대리하고 현시하는 사회적 사건이기도 했다. 당대인들이 지적한 바 있듯이 이들의 죽음은 1960년대를 돌아보게 하고 향후의 시대를 전망하게 하는 “가장 시그니피컨트한 사건”이었으며, 이 시대에 누가 불온한 자로 낙인찍혔는지를 알려주는 징후적 사건이었다.
이 두 번의 죽음 사이의 한국을 들여다보는 일을 통해 일상의 수준으로 파고들던 냉전/분단 체제의 논리와 통치 권력 및 대항 권력이 생산하던 실제적/담론적 현실이 어떤 화학작용을 통해 한 개인의 삶에, 나아가 특정한 집단의 삶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는지를 성찰한다. 불온한 존재들의 삶과 죽음은 ‘협력과 저항’이나 ‘폭력과 희생’이라는 이해의 방식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도 환원될 수도 없는 측면들을 되비쳐주며, 보다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원초적 장면들과 대면하게 한다.
‘불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은 한국사회를 구성하고 이끌어간 동력을 파악하는 일이다. 『불온의 시대』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반추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적 삶을 성찰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1960년대, 두 죽음의 사이
1. 문학과 역사를 읽는 하나의 방법
2. 불온의 역사-전근대, 식민화, 분단
3. 불온의 시대-데모와 민주주의
4. 논의 대상과 쟁점들
제2장 불온청년, 신원의 정치와 성명전
1. 공안사건 전성시대, ‘북한’이라는 배후
1) 공안의 권력과 불온의 통치술
2) 사상최대의 공안사건과 불온잡지
3) ‘불문율’ 혹은 ‘감각의 양식’-반정부?반미?용공?비도덕
2. 데모의 시대, 혁명과 불온
1) 청년지식인의 신원-“애국자”와 “반국가사범”
2) 주권과 혁명, 그리고 성명전
3) ‘민주주의의 적들’과 ‘지성의 비상사태’
3. 통치의 기술, 법과 서사
1) ‘법의 이름으로’, 파국의 예방과 계엄령
2) 가부장적 체제와 해제하는 권력
3) 권력의 노이로제와 학원의 정상화
4. 옥중기와 진술의 정치학
1) 참회와 갱생, 고백이라는 장치
2) ‘나를 보라’, 남겨진 시간과 글쓰기
3) ‘미해결의 장’, 분열의 기록과 교합되는 언어들
4) 징후적 텍스트와 자기 기술의 테크놀로지-자백, 전향, 옥중기
제3장 빈민대중, 비/가시성과 성원권
1. 법정에 선 문학
1) 필화사건과 검열의 논리-“작품의 명랑화”
2) 비평의 장소들과 재현의 심급-남정현 ?분지? 사건
3) 불온시와 정신병-김지하 ?오적? 사건
4) 문학과 법
2. 불온의 비가시역
1) ‘빈민대중’이라는 쟁점-반미, 용공, 내셔널리즘
2) 치외법권의 장소들과 불상사
3) 오염과 게토화-‘우리이면서 우리가 아닌’
3. 재현의 문화정치와 가시권의 재구축
1) 비가시성의 가시화-“들어라 코리안들아”
2) 혈육과 구경꾼, 연민의 중지
3) 현실과 픽션, 허물어지는 경계들
4. 사회적 성원권과 파괴적 자기현시, 분서(焚書)와 분신(焚身)
1) 복지국가를 떠도는 ‘무서운 풍자’
2) 불가해한 타자들, 폭동의 시간과 ‘진짜 공포’
3) 근로기준법과 청년노동자-노동해방이면서 미적해방인
제4장 비켜선 자리, 불온한 문학의 장소
1. 명랑사회와 문학의 우울
1) 명랑의 불가능성
2) 문학의 장소성
2. 거리와 텍스트에서 불온을 실행시키기
1) ‘불온’이라는 비평언어와 ‘혁명’의 지속-‘문제는 4월 이후다’
2) 거리의 항거, 시를 이행하는 일
3. 감각의 통치 불/가능성
1) 감시사회와 권력/문학의 노이로제
2) ‘만지지 말라’, 오염된/되는 신체와 북한
제5장 불협화음(dissonance)-결론을 대신하여
1. 가면(假面)과 가성(假聲)-‘언어’의 궁리에 대하여
2. 두 개의 유언비어-‘법’과 ‘신의’에 대하여
참고문헌
간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