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적 지식인, 최남선
이 책의 문제의식은 “1908년 19살의 조숙한 청년 최남선은 『소년』과 『경부?도노래』, 『한양노래』에 실을 사진을 고르면서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장편창가들과 『소년』, 『청춘』에서 경복궁ㆍ창덕궁, 각종 사찰을 위시한 조선 건축물, 성난 노도처럼 우뚝 솟는 근대식 빌딩, 기차와 전차, 전화와 우편 등 각종 근대 기물, 국외서 박래한 선진 제국의 세련되고 웅장한 문명도시의 이미지, 그리고 어쩌다 등장하는 식민지나 오지(奧地)의 전근대적인 의식주 풍경 등을 계속 보았기 때문이다.
육당 최남선은 기쁨과 위용의 조선을, 그것의 앞선 모본으로서의 서양과 일본을, 또 조선보다 뒤처진 야만과 원시를 동시에 감각하고 응시하며 문명개화를 향한 계몽의 상상력과 수사학을 머릿속에 떠올리느라 바빴을 것이다. 저자는 거기서 피어난 문화민족주의의 이념형이 ‘신대한’이었고 또 ‘대조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육당은 그런 점에서 근대적 ‘문인’이기 전에 전통의 ‘문사’였고 또 근대와 전근대를 넘나드는 계몽적 지식인이었다고 본다.
최남선의 철도창가와 시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성
제1부 ‘최남선·근대시가·네이션의 상상력’에는 7편의 글을 묶었다.
육당의 미학적·이념적 근대성을 대표하는 『경부?도노래』와 『한양노래』, 「세계일주가」를 각각 다루며 최남선의 문명개화의 의지와 그런 시선 아래 바라보는 ‘신대한’의 구체적인 면모를 살폈다. 여러 사진 자료도 함께 수록해 최남선의 이상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일제와 서구가 방대한 양의 사진과 사진엽서로 남긴 뒤처진 조선과 민중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인식과 이해가 거의 생략된 최남선의 문화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최남선의 철도창가는 이후 식민지 조선의 철도창가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가장 뜻 깊은 글 가운데 하나는 일제 시대 창작, 향유된 철도창가 6편(「경인철도가」, 「경의철도가」, 「경원철도가」, 「호남철도가」, 「경주행진곡」, 「마산행진곡」)을 찾아내어 그 가사를 소개, 분석한 「조선 철도창가의 기억과 향유를 위하여」일 것이다. 저자는 원전을 찾으려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결국 원전을 찾지 못했다. 대신 어디선가 떠돌고 있을 6편의 철도창가를 토대로 작성된 (구)철도청의 『철도 100년 가요집』 및 코레일 홈페이지 ‘역사관’을 살피게 됐다. 주어진 자료를 토대로 근사치에 가까운 원전 확정의 노력과 함께 최남선 철도창가와의 유사성 및 차이성, 식민지 시대 투어리즘과 철도창가와의 관계 등을 세밀하게 해명했다.
또한 한국의 철도창가들에 스민 개성과 영향, 전통과 박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살펴보기 위해 일제의 『만한철도창가』와 러일전쟁 당시의 군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메이지 유신 이래 선진문명국임을 자처하던 일제가 어떻게 이웃의 조선과 만주를 침략했으며, 폭력적 지배 과정을 ‘만한경영’이라는 자국민의 의지와 꿈으로 변색시켜 갔는가를 문화정치학의 관점과 방법 아래 살펴보았다. 일제의 ‘만한’ 지배와 자국의 심상지리 확장을 위한 치밀한 전략과 선전을 그림 자료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어 ‘신대한’에 비견되는 ‘대조선’을 향한 최남선의 의지와 욕망을 해부할 목적으로 장편창가 『조선유람가』와 육당의 시조론을 다뤘다. 『조선유람가』는 국토순례의 결과물이자 불함문화론의 결정체라 할 『백두산근참기』, 『심춘순례』, 『금강예찬』 등을 노래로 압축, 리듬화한 결과물이다. 육당은 조선의 음률과 정신의 기원으로서 시조를 유달리 강조했는데, 그것의 계몽성과 심미성의 연관과 갈등, 가치와 한계를 함께 살펴보기 위해 육당의 민요론 및 가람 이병기의 시조론을 함께 읽었다.
제2부는 ‘청년 최남선 시대의 근대 매체와 문학적 글쓰기’로, 6편의 글을 묶었다.
1905년∼1920년대 사이의 글쓰기 형식과 종류 및 그것들의 연속성과 단절성을 신문과 종합잡지, 문예지의 삼각 구도 속에서 살펴보는 작업이다.
먼저 『대한매일신보』의 계몽가사와 독자투고시를 통해 몇 년의 시간 속에서도 활기차게 변모하는 근대 조선어와 근대시의 윤곽을 확인한다. 『대한매일신보』의 시가들과 정신을 입체화하기 위해 『소년』 및 『청춘』의 시가와 산문, 번역에 대한 글을 함께 실었다. 두 매체의 ‘조선주의’의 공통성과 차이성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마지막으로 개성의 창조와 진솔한 생을 꿈꾸며 집단의 공리성에 집착하는 계몽주의를 경원시하는 『창조』의 비평 담론을 검토했다. 그럼으로써 세 매체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바의 계몽적ㆍ예술적 소명과 그에 합당한 근대어의 실험 및 성취에서 자신들의 의의와 가치를 찾았음을 밝히고자 했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최남선ㆍ근대시가ㆍ네이션의 상상력
제1장 철도창가와 문명의 향방-『경부?도노래』와 『만한철도창가』의 경우
1. 창가가 철도를 노래한 사연
2. 철도여행과 국가의식의 결속
3. 철도창가의 역사 기억과 현실 재현의 문제
4. 이미지의 선택과 배치, 그리고 계몽의 효과
5. 철도창가에 대한 기억과 향유의 전망
보론1 조선 철도창가의 기억과 향유를 위하여-6편의 철도창가 소개와 개관
1. 조선 철도창가의 역사와 현재
2. 경향(京鄕)의 기적 소리-‘조선’의 횡단과 종단
3. 철도 여행의 양가성-‘조선적인 것’의 빛과 그림자
4. 일제 조선철도의 자랑이 뜻하는 것-결어를 대신하여
보론2 일제 창가와 군가에 표상된 만주 제패의 의미-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 러일전쟁기 일본 창가와 군가의 문제성
2. 승전과 미개의 땅 만주, 투어리즘과 계몽의 책략
3. 전쟁의 만주와 군가의 일본, 그 총력전의 정체
4. 만주의 부상, 만주의 실종-결론을 대신하여
제2장 근대계몽기 ‘한양-경성’의 이중 표상과 시적 번역
1. ‘한양-경성’, 식민지 근대의 표상 공간
2. ‘한양-경성’, 문명에 병들다-『대한매일신보』의 경우
3. ‘한양-경성’, 문명의 기차에 올라타다-최남선 시(가)의 경우
4. 한일합방 후 ‘경성’ 체험의 분화와 내면화 경로
제3장 제국ㆍ문명ㆍ투어리즘-최남선의 「세계일주가」(1914)를 읽는 한 방법
1. 투어리즘의 근대성 또는 양면성
2. 최남선의 장편창가와 네이션의 상상력
3. 최남선의 「세계일주가」와 이케베 요시다카의 『세계일주창가』
4. 「세계일주가」의 투어리즘과 근대 문명의 전유
제4장 도래하는 ‘대조선’, 귀환하는 ‘영지(靈地)’-최남선 『조선유람가』의 문화정치학
1. 장편창가 『조선유람가』의 문제성
2. 「조선유람가」의 탄생과 확장, 그 차이화의 의미
3. 조선 ‘유람’, 숭고 대 폭력 관전기(觀戰記)
4. 「조선유람별곡」을 덧붙인 까닭-결어를 대신하여
제5장 노래하는 민족, 읽는 서정-최남선과 이병기의 시조론 재고(再考)
1. ‘조선주의’의 미학 ‘시조’, 계몽성과 심미성의 사이
2. 시조의 기원점 또는 시조의 반면체로서 ‘민요’
3. 정형률(整形律)의 근대성과 그 파장-결어를 대신하여
제2부 청년 최남선 시대의 근대 매체와 문학적 글쓰기
제1장 『대한매일신보』의 이중판본 정책과 근대어 형성-계몽가사(歌辭)를 중심으로
1. 근대계몽기 ‘글쓰기’의 상황과 조건
2. 『대한매일신보』의 언어이념과 의식
3. 계몽가사 쓰기-창조와 번역 또는 경합과 연대
4. 『대한매일신보』 파국의 어떤 의미
제2장 근대매체의 탄생과 시 언어의 분화-『대한매일신보』 독자투고시의 경우
1. 대중매체와 독자투고시의 탄생
2. 『대한매일신보』 독자투고시의 현황과 특질
3. 관습의 반복과 갱신의 사이-국한문 투고시
4. 투명한 언어의 안과 밖-국문 투고시
5. 독자투고시의 위계화 현상, 그 이해의 실마리
제3장 ‘신대한’과 ‘대조선’의 사이(1)-『소년』지 시(가)의 근대성
1. 『소년』지 시(가)의 근대성을 읽는 하나의 방식
2. ‘신대한 소년’과 ‘조선 남아’ 되기-그 사행(思行)의 덕목
3. 민족 보편성에 과잉 투자된 『소년』 발 덕목들의 운명
제4장 ‘신대한’과 ‘대조선’의 사이(2)-『소년』지 시(가)의 근대성
1. 『소년』의 시(가)를 다시 읽다
2. 국민국가 ‘신대한’의 욕망과 ‘소년’의 호출
3. 서사시적 과거 ‘대조선’의 현재화와 미래화
4. 『소년』지 시(가)를 덮으며
제5장 1910년대 번역ㆍ번안 서사물과 국민국가의 상상력-『소년』과 『청춘』을 중심으로
1. 『소년』과 『청춘』을 다시 읽는다는 것
2. ‘소년’과 ‘신대한’, ‘우리들’ 혹은 ‘국민’이라는 감각
3. 번역이 창출하는 ‘우리들’(1)-‘용소년(勇少年)’들의 바다와 국가
4. 번역이 창출하는 ‘우리들’(2)-자기와 국민 구원술로서의 ‘노동역작’
5. 번역과 내면화의 길-결론을 대신하여
제6장 유학생 문예잡지에서 비평 담론의 형성과 분화-『창조』를 중심으로
1. 근대 문학비평의 성립과 분화를 바라보는 관점
2. 『창조』 비평의 기원과 전개의 저변
3. 『창조』 비평의 성격과 근대성의 문제
4. ‘비평’의 학습과 내면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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