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소설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고 첫 저서 『제국 권력에의 야망과 반감 사이에서-소설을 통해 본 식민지 지식인 이광수의 초상』(2005) 이래 줄곧 이광수 연구에 집중해온 소장 연구자 최주한의 두 번째 연구 결과물인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가 소명출판에서 간행되었다. 식민지 문학의 윤리라는 제목 아래 단단히 묶인 이 책은,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이광수의 문학과 사상에 내재한 식민지적 윤리의 가능성을 탐색해온 결과물이다.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가 나란히 등장하는 제목은 독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광수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민족주의와 반민족주의의 양 극단을 달리고 있는데다 근대 문학자이자 사상가로서의 이광수의 업적이라는 것도 사회진화론으로 대변되는 서구 혹은 일본 근대 문학과 사상의 모방과 이식이라는 평가가 여전히 지배적인 까닭이다. 저서에 실린 일련의 논문들은 이광수에 대한 이런 저런 정치적 판단이나 선험적인 평가를 내려놓고 일단 이광수가 접했던 다양한 문학자들의 작품과 사상가들의 저서를 직접 따라 읽으며 이광수의 사유에 보다 밀착하는 방법론을 취함으로써, 이광수의 문학과 사상에 서구 혹은 일본 근대 문학의 모방과 이식을 넘어서는 사유가 내재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식민지 문학의 윤리란 저자가 그 오랜 탐색 끝에 얻은 잠정적인 귀결이자 결론인 셈이다.
이광수의 문학과 사상에 내재한 식민지적 윤리의 가능성, 그리고 그 탐색
책의 앞 부분에는 말 그대로 이광수를 이해하기 위한 이런 저런 시도의 일환으로 쓰인 글들을 묶었다. 특히 1장과 2장은 저자가 그 동안 단편적으로 쓴 글들의 문제의식을 토대로 이광수의 평전을 준비해보겠다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논문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의 글이어서 글을 쓰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부드럽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 이어진다. 저자는 이 글을 쓴 뒤에도 이광수 관련 자료들이 새로이 발굴되어 쏟아져 나온 데다, 정력적으로 움직이며 변화해가는 이광수의 면모를 역동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완성된 평전을 통해 작가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될 날을 기약하고 있다.
이어서 제2부에서는 식민지 문학의 윤리라는 관점에서 이광수를 조명한 글들을 묶었다. 저자가 이광수 문학의 윤리성을 처음 표나게 내세운 것은 4장에 실린 ?민족개조론과 상애의 윤리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자는 이 글을 준비하기 위해 이광수가 유년시절에서 청년시절에 걸쳐 접했던 동학이며 톨스토이, 크로포트킨의 사상을 따라 읽으면서 인본주의에 기반을 두어 근대 제국주의의 논리에 맞섰던 근대사상의 또 다른 한 축이 이광수 사상의 기저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커다란 수확을 얻기도 했다. 이 무렵 식민지 근대문학이 한갓 서구 혹은 일본 근대문학의 모방이고 이식이라면 식민지 문학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던 저자에게 그것은 그 가능성의 단초를 열어주었던 까닭이다. 1장에서 6장에 이르는 나머지 글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 가능성을 탐색해간 노력의 산물이다. 저자의 이러한 직관이 눈 밝은 연구자를 만나 논리적 정합성과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큰 성과가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책의 말미에서는 최근 2, 3년간 『근대서지』를 중심으로 이광수와 관련하여 새롭게 찾아낸 자료 혹은 새롭게 조명한 자료에 관한 글을 묶었다. 『신한자유종』(1910), 『아이들보이』(1914), 『대한인정교보』(1914), 『새별』(1915), 『학지광』(1916), 『홍수이후』(1916), 『경성일보』(1917), 『방송지우』(1944), 『일본부인』(1944) 등 다양한 매체가 발굴되면서 이광수 관련 새 자료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이광수 연구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이광수의 새로운 면모와 더불어 이광수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이광수 연구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으니, 저자는 이광수 연구자로서는 분에 넘치는 행운을 누렸다 말한다. 말미에 붙인 부록 자료는 후속 연구에 도움이 될까 하여 이광수전집에 미수록된 자료를 정리한 것인데, 앞으로도 자료 정리에 힘써 『이광수 초기 문장』(1908~1919), 『이광수 문학론집』(1910~1945), 『이광수 후기 작품집』(1936~1945) 등 기존의 전집을 보완할 수 있는 자료집을 간행해나갈 예정이다.
저서의 또 하나의 강점은 이광수 연구에 획을 그을 만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굴하고 정리해낸 데에 있다. 『검둥의 설움』(1913)의 번역 저본을 찾아 이광수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번역문학 연구에도 일정하게 기여할 수 있게 되었고, 대륙방랑시절 치타에서 관여했던 시베리아 국민회 기관지 『대한인정교보』(1914)에 실린 자료들을 발굴하여 오산시절과 2차 유학시절, 그리고 상하이 임시정부시절 잇는 사상적 연속성을 살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단편 ?허생전?(1914)와 ?물나라의 배판?(1914)을 발굴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되고 있는 장편 『무정』(1917)에 이르는 근대소설 문체 확립을 향한 또 하나의 도정을 검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 그리고 1917년 ?오도답파기행?의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판본을 검토하고 소개함으로써 이광수의 이중어 글쓰기 연구의 새로운 지반을 마련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방송지우』(1943)와 『일본부인』(1944)에 실린 새로 발굴된 조선어 단편에 대한 고찰도 이광수의 친일문학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저서 말미에 수록된 400여 쪽에 달하는 전집 미수록 자료들은 그동안 진행한 연구의 부산물로서, 앞으로 이광수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일구는 데 톡톡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최주한이 오랫동안 이광수 주변을 서성인 덕분에, 이광수 연구에 관한 알토란같은 두 번째 결과물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소명출판, 2014)가 세상에 나왔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짙어지는 이광수의 문향은 독자들의 가을을 풍족하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이광수를 이해하기 위하여
제1장 중학시절의 오산시절 전후의 이광수
제2장 제2차 유학시절의 이광수
제3장 제국의 근대와 식민지, 그리고『무정』
제4장 이광수와 식민지 문명화론
제5장 1930년대 전반기 이광수의 지도자론
제6장 이광수의 불교와 친일
제2부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
제1장 근대 초기 번역문학과 미국
제2장『검둥의 설움』과 번역의 윤리-정치학
제3장 제국의 근대와 식민지, 그리고 이광수
제4장 민조개조론과 상애(相愛)의 윤리학
제5장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재고
제6장 이광수의 불교적 사유와 보편 윤리의 가능성
제3부 이광수 다시 읽기
제1장 근대소설 문체 확립을 향한 또 하나의 도정
제2장 이광수와『대한인정교보』9ㆍ10ㆍ11호에 대하여
제3장 '번역된(탈)근대론'으로서의『무정』연구사
제4장 두 가지 판본의「오도답파여행」
제5장『사랑』의 저자는 누구인가
제6장 이광수의 친일문학을 다시 생각한다
제7장 일제 말기 이광수의 이중어 글쓰기 연구 시론
제4부 부록-전집 미수록 자료
초출일람
간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