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언론과 소설, 그 둘을 잘 녹여낸 소명출판의 신작
한국의 근대신문은 근대문학의 변화를 이끌었고, 더불어 오랜 기간 동안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방식의 기록과 복제 그리고 유통을 통하여 한국인의 문학과 문화 전반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김영민의 『한국의 근대신문과 근대소설 3-만세보』(소명출판, 2014)는 이전의 시리즈에서와 같이 한국의 근대신문에 수록된 서사 자료들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정체성을 살펴보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일찍이 앞의 책에서 보여준 바 있듯이, 이 책에 녹아있는 저자의 주된 관심은 한국 근대소설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었는가’이다. 저자 김영민은 시공간의 좌표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이는 소설의 양상을 자료에 근거하여 실증적으로 살펴, 다양한 서사전통으로부터 소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착하게 된 과정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해 내었다.
약 19세기까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전통에서 문학은 역사나 철학 담론과 엄격히 구분되지 않았고, 그럴 필요성도 제기되지 않아왔다. 소설 역시 사건을 기술하는 글쓰기 방식인 ‘서사(敍事)’의 한 갈래를 지칭하는 말로, 다른 서사양식들과 더불어 변개의 가능성을 풍성히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소설을 예술의 한 형식으로 규정함으로써 독립된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 일련의 이러한 과정은, 어쩌면 다른 한편에서 소설이 가진 그 변개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한해 온 역사가 되는 것이다.
저자 김영민은 책에서 문화 생산의 물적 토대인 매체와 그 안에 시대를 녹인 콘텐츠들에 주목하여 서사를 진행한다. 매체는 그 자체가 문화의 일부이면서 당대 문화를 바꾸는 선도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 신문의 탄생이 한국 근대문학의 내용과 형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저자가 강조해 온 바이다. 근대신문과 근대소설의 관계를 살피려는 이 장기적인 기획은 2006년에 맨 처음 『대한매일신보』, 그 다음 2년 뒤인 2008년에는 『한성신보』를 바탕으로 진행된 연구를 선보였다. 그리고 약 6년 뒤인 올 해 2014년에 『한국의 근대신문과 근대 소설 3―만세보』이 발행되었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를 연재하여, 신문소설의 기원을 만든 『만세보』는 언론 그 자체로써, 언론의 참 의미를 잃어버린 작금의 시대에 경종을 울릴만 한 가치를 지닌다. 사장 오세창은 창간사에서부터, 사회를 조직하여 국가를 형성함이 시대의 변천을 따라 인민의 지식을 계발하고 야만으로부터 벗어나 문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만세보』의 발행진들이 바라본 조선 사회의 모습은 ‘비감(悲感)을 금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던 것이었다. 이러한 조선의 슬픈 자화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던 『만세보』에 대한 분석은, 문학사적 맥락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상당한 의의를 지니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만세보』가 사용한 부속국문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우세했다. 일본의 후리가나 표기를 모방한 것이 부속국문체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성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만세보』가 사용한 부속국문체는 후리가나 표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구상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 문체라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한다. 부속국문체의 본질은, 문체가 독자의 신분과 계층에 따라 결정되던 상황에서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만세보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탈피하고 더불어 『만세보』가 지닌 매체로써의 특성과 그것이 지닌 한국 근대소설을 잘 풀어낸 『한국의 근대신문과 근대소설 3-만세보』, 이 책의 발간이 반가운 이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세보』와 근대소설, 그리고 이인직
제1부 연구편과 제2부 자료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만세보』와 그것에 실린 작품들을 소개하며 그것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우선 『만세보』의 간행 서지를 정리하고 그것의 성격을 꼼꼼히 살피고 그것의 성격에 대해 정리하였는데, 대표성을 띠는 여러 영역의 논설들을 선별해 다루는 방식으로 접근하여 다각도로 분석했다. 또한 『만세보』에 실린 여러 작품을 그 당시의 자료와 시점으로 살펴 그것이 지닌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낸다.
『만세보』 소재 단편 중 하나인 「소설 단편」은 『만세보』에 게재된 최초의 서사문학 작품이면서, 근대문학사 최초로 부속국문체로 발표된 작품이다. 또 다른 단품인 「백옥신년」은 근대신문 최초의 신년소설이라는 문학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이러한 단편뿐 아니라 『만세보』 이외의 여타 근대신문에서 볼 수 있는 신년소설들의 계보에 대해서도 정리하여 독자들의 문학사적 이해를 도왔다.
『만세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인직, 이 책은 그의 생애와 그의 작품 「혈의루」, 「귀의성」에 대한 논의도 포함한다. 이인직의 생애와 「혈의루」의 새 판본 발굴을 통하여 서지 수정 등 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들을 최대한 수용하고 반영한 것이다. 또한 「귀의성」을 살피는 과정에서 「귀의성」의 연재 도중 단행본이 먼저 출간된 작품이라는 잘못된 주장을 바로 잡고, 작가가 장지연으로 잘못 표기된 판본이 학계에 유통된 이유 등을 밝히기도 하는데, 이러한 점들은 단순한 개인의 연구 성과를 넘어 문학사적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이와 더불어 이 책은 『제국신문』에 수록된 「혈의루 하편」에 관하여 작가의 진위(眞僞) 논란부터 판본의 위상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인직이 『만세보』의 주필로 재직하면서 왜 『제국신문』에 소설을 연재했는지, 그리고 연재 시작 11회 만에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 그 동안 독자들이 궁금해 해왔던 부분들에 대하여 차례로 논증하였다. 더불어 작법상의 특질 비교를 통해 「혈의루 하편」과 이인직의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도 살펴보았는데, 이 점은 『한국 근대소설사』(솔출판사, 1997)를 쓰면서 풀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숙제에 대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저자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언론의 의미가 쇠퇴한 작금의 시대에, 한국의 근대신문을 통한 근대소설의 연구를 담아낸 이 책은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독자들에게 따스한 울림을 줄 것이다. 『한국의 근대신문과 근대소설 2-한성신보』(소명출판, 2008)에 이어 6년 만에 세상에 나온 『한국의 근대신문과 근대소설 3-만세보』의 발간이 더욱 반가운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연구편
제1장 『만세보』의 서지와 성격
1. 『만세보』의 서지
2. 주요 논설을 통해 본 『만세보』의 성격
제2장 『만세보』의 문체 연구
1. 근대신문의 문체와 부속국문체의 선택 배경
2. 『만세보』의 부속국문체 연구
제3장 『만세보』 소재 단편소설 연구
1. 「소설 단편」
2. 「백옥신년」과 근대신문의 신년소설
제4장 『만세보』 소재 장형소설 연구 1-「혈의루」
1. 이인직의 생애
2. 혈의루
제5장 『만세보』 소재 장형소설 연구 2-「귀의성」
제6장 「혈의루 하편」 연구
제2부 자료편
1. 소설 단편 1906.7.3~4
2. 백옥신년 1907.1.1
3. 혈의누 1906.7.22~10.10
4. 귀의성 1906.10.14~1907.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