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는 단어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어떤 기대와 상상을 자극해왔을까? ‘사회’의 역사적 기원을 그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상상ㆍ상징체계ㆍ실천을 상호 연관시키며 살펴본 반가운 시도가 책으로 엮였다. 김현주의 『사회의 발견』(소명출판, 2013)이 바로 그것이다. 본서는 한국 내에서 ‘사회’에 대한 이런 저런 기대와 상상, 암묵적인 인식들이 담론적/실제적 행위에 흡수되고 연루되는 과정에서 논리화되거나 새로 개념화되고, 그 개념이 다시 새로운 실천을 자극하면서 변천해온 과정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사회’에 대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이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거기에 한국인들의 경험과 사고, 가치체계의 변화가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추적해 낸 총체적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가 ‘국가’와 확실하게 구분되고 ‘민족’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더 큰 호명력을 획득하게 된 때는 1910년대 중반 이후였다. 인문학 연구가 ‘근대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이래 한국에서 ‘근대적인 것’의 탄생, 창안, 발명, 발견을 추적한 보고서들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중은 국민, 민족, 개인, 아동(어린이), 신여성, 청년, 학생, 소년, 인민 같은 정체성이나 종교, 문학, 소설, 예술, 경제, 역사, 연애, 언문일치 같은 제도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 창안, 발견, 발명되었는지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근대적 정체성과 근대적 제도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일반화된 이해도 있다. ‘국민’이나 ‘개인’이 실은 신문이나 소설, 언문일치 같은 사회문화적 제도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 그것이다. 그러한 반면 ‘사회’는 국민이나 민족 같은 집합적 주체에 비해, 그리고 자주 상대 개념으로 거론되는 ‘개인’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그것을 구성해낸 제도나 실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적었다. 이 시기에 대한 문학사ㆍ문화사 연구는 주로 개인, 신여성, 청년, 학생 같은 개념의 등장에 주목해 왔는데, 실제로 이러한 정체성들은 ‘사회의 발견’과 직접 연결된 것이다. 예컨대 ‘개인’은 ‘국가’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등장한 정체성이다. 내면이나 사생활의 문제 역시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대두된 것이다. 더 나아가 문학이나 종교, 경제 같은 근대적 제도들도 ‘사회’의 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3ㆍ1운동 이후 1920년대에 ‘사회’의 경계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일어난 갈등과 경쟁은 식민지근대의 경험과 의식을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핍진하게 반영하고 있다. 본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과거로부터의 ‘사회’를 새롭게 발견해 나갔다.
복수의 담화공동체, 상상의 공론장 ‘사회’는 그것이 맨 처음 저널리즘에 등장한 19세기 말부터 식민지기를 거치면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들을 내장하게 되었다. 현재 사회라는 말에는 사회의 기능과 목표는 무엇인지, 그 구성원들이 추구해야 할 공동의 가치는 무엇인지, 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집단은 누구인지, 사회를 자신의 정당성의 기반으로 삼는다거나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위치는 어떻게 확보되는지, 사회에서 개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사회는 개인들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회는 국가나 민족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갈등과 충돌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다. 본서는 식민지배 초기에 해당하는 1910년대와 3ㆍ1운동 이후 1920년대 전반기에 ‘사회’의 개념ㆍ장르ㆍ실천이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19세기 말에서 1900년대 말까지 근대적 국가를 형성하려는 위로부터의 노력이 그 내부의 보수성과 열강의 침입에 의해 극히 불안정했던 상황에서 형성된 ‘사회’의 개념ㆍ장르ㆍ실천의 성격에 대해서도 종합적ㆍ개괄적으로 다루었다. 더 나아가 식민지기와 독립국가 수립 이후 ‘사회’의 불/연속에 대해서는 결론부에서 다루었으며 사회에 대한 상상과 개념에 대한 연구, 비판 장르와 그 형식 창조적 이데올로기인 공공성에 대한 연구, 그리고 공론장에 대한 연구를 각각, 그리고 서로 어떻게 연관시키면서 진행할 것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계하여 매끄럽게 풀어나갔다. 우선, ‘사회’나 ‘사회적인 것’이 언제 어떻게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들어왔으며 또 그에 대한 관념과 이미지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추적하였다. 1900년대 후반에서 대략 1920년대 전반기까지 주요 신문과 잡지를 통하여 다양한 개인들과 사회정치적 집단들이 사회에 대해 어떤 관념이나 상상을 표현하고 보급했는지를 살펴보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과 지식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소설들도 참조하였으며, 더 나아가 ‘사회’의 경계나 대표 권한, ‘사회적’ 권리나 가치를 규정하는 일과 관련되었던 중요한 사건이나 논쟁 등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비판 장르의 형식 창조적 이데올로기로서 공공성에도 주목하였다. 비판이라는 장르가 세계를 사유하고 개념화하는 방식, 그리고 감각하는 방식을 공적인 것 혹은 공/사 범주의 근대적 분할이라는 지성사적 주제와 관련하여 검토하였다. ‘사회’의 자기 이해가 변화되면서 비판 장르의 내적 형식도 변화했는데, 본서는 이러한 비판의 관례와 문체, 수사적 기능(사회적ㆍ인지적ㆍ의사소통적 기능)이 ‘사회’에 대한 상상 및 이해와 상호 작용하면서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살펴보았다. ‘공’과 ‘사’를 가르던 기왕의 분할선을 흐릿하게 하면서 등장한 ‘사회’가 자기 안에서 공통적인 관계성(commons)을 형성해가는 실천 혹은 방법을 ‘비판’을 매개로 하여 쫓아가 본 것이다. 이 둘을 아울러 ‘사회’에 대한 이해와 상상이 서로 교류하고 사회의/에 대한 글쓰기인 ‘비판’이 싹트고 성장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공간 또는 환경을 재구성 했다. ‘사회’에 대한 상상과 개념, ‘사회’의/에 대한 글쓰기는 신문, 잡지라는 새로운 미디어, 출판사나 학회 등의 학술ㆍ문화기구, 정치ㆍ사회적 단체, 근대식 학교 등의 네트워크에서 싹텄고 또 거기서 보급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담화 공동체, 네트워크, 그리고 공론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식민지기에 ‘사회’의 상상과 표상이 어떤 제도화된 영역 안에서 형성되었다기보다 불안정하고 비가시적인 연결망을 흐르면서 성장하고 서로 교류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조선 전역을 포괄하는 한글 매체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밖에 없었던 1910년대에는 특히 그러했다. ‘공론장’은 그 본성상 ‘사회’에 대한 상상, 표상, 그리고 실천이 상호 교류하고 작용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 책에서는 ‘사회’에 대한 이해와 비판 장르에 대한 연구를 사회ㆍ문화적 실천 및 미디어ㆍ담론 네트워크에 대한 탐구와 연결함으로써 근대의 지적ㆍ문화적 환경에 대한 분석을 다각화하였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이나 탈국민국가적 경향은 한국인들이 자기반성, 자기 기술(description), 자기 주체화의 양식을 다원화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근대성에 대한 지성사적ㆍ문화사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김현주의 『사회의 발견』은 근대적 공공성 혹은 공/사의 근대적 분할에 대하여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본서는 ‘사회’에 대한 상상과 개념, 비판의 글쓰기, 그리고 공론장의 형성 및 변환에 대한 역사적 검토를 통하여 근대 초와 식민지기에 공/사의 새로운 분할이 가졌던 의미와 거기에 내재했던 모순과 역설을 드러냄으로써 근대적 공공성을 성찰하며, 나아가 그것의 탈구축을 위한 지성사적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사회’의 (재)발견 과정에 대한 탐구는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관계성을 구상하기 위한 역사적 시계(視界)를 마련해줄 것이다.
목차책머리에
제1부 사회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서
제1장 사회의 개념ㆍ장르ㆍ실천의 상호작용 1. 사회를 통해 식민지근대에 접근하는 세 가지 방향 2. 역사적 해석의 텍스트, 사회 3. 사회의 상징체계, 비판의 장르 4. 복수의 담화공동체, 상상의 공론장
제2장 근대국가 형성기의 사회, 신문과 논설, 그리고 그 잉여 1. 1900년대 사회 개념의 地形 2. 신문이 재현한 사회-(정치)단체와 학교 3. 논설ㆍ연설의 세계감각으로서의 국가적 공공성 4. 유길준과 이인직, 사회를 시장/일상세계로 상상하다 5. 사회를 재현한 신소설과 신연극
제2부 식민화와 사회의 규율화/주체화의 역동
제1장 식민주의 저널리즘과 식민지민의 규율화 1. 1910년대 통치 영역과 생활 영역의 매개범주 찾기 2. 규율 기법을 전유(하고자)한 식민국가 3. 『매일신보』의 표상체계와 국가/사회의 생산 4. 규율화 기구로서의 신문
제2장 『매일신보』에서 재창조된 사회 1. 1910년대 초반 사회에 대한 식민주의적 재현의 특징 2. 사회 개념의 위축 3. 생업세계로서의 사회, 私事化된 사회 4. 『매일신보』, 문명한 국가/무질서한 사회를 생산하다 5. 식민지민의 사회 표상과 자기 식민화
제3장 사회의 자기 통치라는 문제 1. 1910년대 중반 『매일신보』와 토착적 발화자의 등장 2. 규율하는 국가의 사회 담론과 그 자원들 3. 이광수, 사회의 욕구와 권리를 다시 정의하다 4. 근대적 문화 엘리트의 협상/투쟁 5. 사회화 전략의 효과
제4장 재일 유학생의 사회로의 이동 1. 동아시아의 사상 연쇄-정치에서 사회로 2. 재일 유학생, ‘국가’를 괄호 안에 넣고 ‘개인’으로 ‘사회’를 구성하다 3. 사회가/를 호명한 삶의 영역들-경제와 문화 4. 시장의 메커니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제
제5장 국지적 담화공동체를 호명한 사회와 그 기술로서의 비판 1. 『매일신보』에는 보이지 않는 집합적 주체들 2. 국지적 담화공동체와 그 네트워크들 3. 국지적 담화공동체들의 ‘사회화’ 4. 사회의 자기 통치기술로서의 비판
제3부 포스트 3ㆍ1의 정치문화와 사회적 상상
제1장 다수의 정치와 수평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사회 1. 포스트 3ㆍ1의 대중적 정치문화 2. 김윤식 社會葬 반대운동, 사회의 境界를 다시 협상해야할 사안으로 만들다 3. 사회의 재구성, 민중의 대두 4. 사회, 곧 민중의 의견으로서의 여론 5. 김명식, 비-권력체로서의 사회를 상상하다 6. 이상재 사회장, 수평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사회를 물질화하다
제2장 사회ㆍ민중ㆍ여론을 둘러싼 해석의 정치 1. 1920년대 초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정치의 기초로 부상한 사회 2. 정치문화의 급진화 3. 계몽주의 지식인, ‘사회’를 회피하다 4. 여론으로부터 공론을, 민중으로부터 공중을 분리하다 5. 계몽주의 정치문화와 심리의 정황
제3장 ?민족개조론?의 장르와 이데올로기 1. 논쟁의 정치의 일부이자 그 생산물로서의 ‘민족개조론’ 2. 과학적 기획과 방법의 문서로서의 제안서 3. 이광수, 군중심리학을 재료로 하여 선전의 정치를 고안하다 4. 사회, 곧 다수의 힘에 대한 공포
제4장 사회주의의 사회 표상과 비평/비판의 장르 1. 『신생활』의 사회현상 비평과 사회문제 비판 2. 자유사상을 고취하는 비평 3.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과학으로서의 비판 4. 사회주의, 사회를 구조화된 총체로 표상하다
제5장 대중지성의 장치로서의 비판ㆍ토론 1. 대중이 사회주의라는 앎을 자기화한 과정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 2. 『개벽』, 다수의 지성을 인정하는 정치를 실천하다 3. 지식대중의 자기-상호 통치기술로서의 비판ㆍ토론 4. 비판ㆍ토론의 사회적 상상
제4부 결론을 대신하여 -식민지의 ‘사회’/독립국가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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