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비평가들의 소설 논의를 재조명하다
1930년대 비평가들의 소설 논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나왔다.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의 소설 이론』(소명출판, 2013)이 그것이다. 이 책은 임화, 최재서, 김남천의 논의를 중심으로 당시의 소설 평론을 연구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그 논의를 대상으로 이 시기 소설 논의의 전반적 양상을 살펴보고 그 성격을 규명하려 하였다.
문학연구는 작품을 미학적 문맥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문맥에서도 설명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1930년대 비평가들의 논의는 이와 같은 문학 연구의 성격에 가장 잘 들어맞는 연구대상처럼 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 제국주의 국가 권력에 의한 문학의 정치적 도구화 요구 앞에서, 임화, 최재서, 김남천은 소설의 미학을 정교하게 다듬으면서도 정치적 계기와 경제적 계기를 미학 내적인 것들로서 다루는 데 소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문학 비평은 1930년대 문학의 모습에 관한 역사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미학적·정치적·경제적 계기들의 역학관계로써 형성된 근대 문학의 존재 방식에 관한 사유를 전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내포한다.
1930대 후반 소설 장르 논의는 김남천의 「지식계급 전형의 창조와 『고향』 주인공에 대한 감상」(『조선중앙일보』, 1935.6.28~7.4), 최재서의 「리얼리즘의 심화와 확대-『천변풍경』과 「날개」에 관하여』」(『조선일보』, 1936.10. 31~11.7) 등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비평가들은 무엇보다도 당시 소설 작품들이 조선 사회에 관한 적절한 인식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세태소설과 내성소설이 본격소설의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는 임화의 비판이나 현대소설 작품들이 모럴을 결여하고 있다는 최재서의 지적, 조선 장편소설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장편소설 형식에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한 김남천의 논의는 모두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인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비평가들은 소설 장르의 문제를 크게 두 측면에서 제기했다. 하나는 소설의 통속화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소설의 형식적 균열 문제였다. 먼저 소설의 통속화에 대해 말하면, ‘소설’이라는 용어가 특수한 방식으로 사회를 재현하는 문학 장르가 아니라 시장에 전시된 문화 상품들 중 한 품목을 표기하는 라벨의 지위로 격하된 것을 뜻한다. 통속소설 작가들에게 관심사는 오직 통속적 흥미를 유발할 만한 요소들을 기술적으로 배치하는 것뿐이었다.
또한 1930년대 후반 비평가들은 공통되게 당대 소설 작품들이 조선 사회에 관한 ‘적절한 재현’이 되지 못한다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임화는 소설가들이 문학 정신을 상실한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은 뒤 역사적 인식을 일종의 해결책으로 제시했고, 최재서는 현대 사회의 모럴 부재를 그 원인으로 제시한 뒤 인문주의적 교양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김남천은 조선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성에서 궁극적 원인을 찾은 뒤 소설가들에게 리얼리즘의 체득을 요구했다.
당시 비평가들의 인식틀은 간단히 말하자면 문학(소설)과 사회(역사)의 관계에 관한 이해로 살펴본 이 책은 비평가들이 다양한 주제에 관해 쓴 여러 글들을 모아 각각 소설 이론으로서 체계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소설의 형식들에 관한 비평가들의 논의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소설 형식이 소설가가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형성된 것이라면, 그처럼 소설 형식들을 다루는 방식에는 물론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역사의식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소설 형식들에 대한 비평가들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은 그들의 인식틀이나 소설 이론에 대한 검토 작업 못지않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인 것이다.
임화, 최재서, 김남천을 중심으로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소설 장르에 관한 논의가 등장하게 되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한 이 책은, 임화, 최재서, 김남천이 단편적으로 발표한 평론들을 모아 각각 소설 이론으로서 체계화하기도 하였다.
임화의 논의를 살펴본 부분에서는 ‘본격소설’논의에 집중했다. 임화에게 문학이란 상식이나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경험되는 세계를 역사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행위였고, 본격소설은 일상생활의 경험에 대한 파편적 묘사들을 플롯에 의해서 일관성 있게 재구성할 때 가능한 형식이었다. 이와 같은 소설 이해에 근거해서 임화는 1930년대 후반 소설 작품들을 세태소설, 내성소설, 통속소설, 전향소설, 시정소설 등으로 분류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실험소설과 생산소설 같은 형식들을 통해서 본격소설의 실현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다음으로 최재서의 경우에는 ‘현대소설’ 논의에 주목했다. 최재서는 1930년대 조선에 영미 문학이론을 소개함으로써 비평가들의 이론적 성찰에 도움을 주는 한편, 자서전 소설, 관념소설, 가족사 연대기 소설, 르포르타주 소설 등 현대소설 형식들에 관한 검토 및 조선의 소설 작품들에 관한 비평을 통해서 소설 장르 논의에 개입했다. 마지막으로 김남천은 ‘조선적 장편소설’에 관한 논의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모럴, 풍속, 전형적 성격 등의 개념들을 통해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장편소설 이론을 구축했는데, 여기에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장편소설 장르가 형성될 수 있으리라는 강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그는 가족사 연대기 소설이나 총화소설에 관한 사유를 통해서 장편소설 장르의 구체화를 시도하기도 했고, 아메리카 소설에 관한 검토 작업을 통해서 제국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장편소설의 생산이 가능함을 증명하고자 했다.
임화, 최재서, 김남천의 소설 논의를 하나의 이론으로 체계화하여 살펴본 이 책을 통해, 독자는 1930년대 후반 전개된 소설 장르에 관한 논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비평가들은 소설 장르에 인식론적 능력과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소설 장르가 사회의 변화에도 기여하기를 바랐다. 1930년대의 비평가들의 소설 논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이 시점에, 이 책의 출간은 국문학 뿐 아니라 역사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의의를 지닌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식민지 조선 사회와 소설 장르
1. 문제로서의 소설
2. 소설 장르 논의의 이해
3. 소설 이론의 발흥
4. 비평가들의 문제 제기
제2장 1930년대 후반 소설 장르 논의의 형성과 전개
1.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의 상황
2. 사회 인식의 문제와 소설 장르의 의의
3. 소설 장르 논의의 전개 양상
제3장 ‘본격소설’과 1930년대 소설 형식들
1. 문학과 현실 인식
2. 본격소설 논의의 구조
3. 본격소설의 복원 가능성 모색
제4장 ‘현대소설’의 쇠퇴와 서사시의 부활
1. 영미 모더니즘 문학이론
2. 현대소설의 생산 조건
3. 현대소설의 실험과 서사시의 요구
제5장 ‘조선적 장편소설’의 특수성과 현실성
1. 마르크스주의적 문학 이해
2. 장편소설의 구성 요소
3. 조선적 장편소설의 형식 탐색
제6장 1930년대 후반 소설 이론 비판
1. 비평가들의 소설 장르 이해
2. 소설 이론의 딜레마
3. 소설의 미학과 정치학
제7장 소설 장르 논의의 의미와 성격
참고문헌
간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