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규범화는 무엇을 의미하나
‘국어’의 형성은 근대 국민국가 중요한 형성 요건이다. 다시 말해 어떤 언어가 ‘국어’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해당 언어가 국가를 대표하는 통일적 표준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철자법의 정리, ‘표준어’의 확정, 사전 편찬 등의 ‘규범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언어의 규범화 과정이 언어와 국민국가 형성의 관계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이 과정을 언어의 ‘근대화’로 파악해 온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어의 규범화는 ‘국민’ 혹은 ‘민족’의 통일을 위한 방법으로 이해되어 왔으며, 그 자체가 근대사회에 특유한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규범화 작업을 추진하는 ‘힘’의 문제이다. 언어정책을 다루는 연구에서 이미 많이 지적되어 왔듯이, 언어 규범화 작업은 대상 언어에 대한 인위적 개입의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이 정치적 배경과 연결되면 그 과정 자체도 정치성을 띠지 않을 수 없다. 즉, 언어 규범화라는 행위는 그 언어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 규범화에 대해 논하려면 그 사회적, 정치적 배경도 같이 고찰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어는 국가적 권력을 가지지 못한 소수언어였고 일본은 식민 지배국이 더 효율적으로 식민지배 위해 식민지 조선의 언어를 규범화하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언어 지배 구조』(소명출판, 2013)는 언어 규범화의 행위와 사회적, 정치적 환경과 관계 등의 다양한 주체의 언어문제에 대한 관력 방식을 일본 통치 시기 조선이라는 시공간 이라는 동시대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어를 말살한 것일까, 언어 근대화에 기여한 것일까
현재 한국이 채용하고 있는 문자인 한글은 15세기에 만들어진 인공어(人工語)로, 그때까지 한자ㆍ한문을 정서(正書)로 삼은 양반(귀족계급)으로부터 경시되고 멸시당하여, 상대하지 않는 문자였던 까닭에 실용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일본 총독부 시대가 비로소 한글을 보급하고, 소학교 교육에 도입했다는 점을 현재 한국인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國民の歷史』, 産經新聞ニュ-スサ-ビス, 1999, 708면.
‘언어의 근대화’ 과정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한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해 조선총독부에 의한 조선어 규범화 정책, 특히 조선어 철자법 제정에 관여했다. 『식민지 조선의 언어 지배 구조』는 이 사실이 어떻게 전개되고 조선인 사회와 어떤 규정관계를 맺었는가라는 관점에서 조선어를 둘러싼 일본의 언어 지배 구조의 일단을 살펴본다.
조선어 규범화 문제의 전개 과정과 그 움직임은 항상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축으로 존재했다. 조선총독부는 1937년까지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는데 조선어로 읽고, 쓰는 것을 식민지 피지배국민에게 가르치는 것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자연히 조선어를 규범화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조선총독부에 의한 조선어 철자법 규정은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1912, 이하 제1회 철자법),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 대요」(1921, 이하 제2회 철자법), 「언문 철자법」(1930, 제3회 철자법)으로 제정ㆍ개정되었다. 총독부 측의 일차적 목적은 조선어 교과서 편찬 때의 철자법 통일에 있었지만, 각 회 철자법의 성격은 그 의도, 통용범위, 사회적 위치 등의 변화에 따라 변해 단순히 교과서 편찬이라는 교육정책사적 틀로는 파악할 수 없게 되어 갔다. 특히 제2회 철자법 이후에는 일본인 관리에 대한 조선어 장려 정책과 같은 기타의 정책이나, ‘문화정치’ 아래 조선 지식인의 조선어 연구와 같은 사회적 동향 사이에서 상호 규정 관계를 보이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조선어연구회는 언어 운동의 주도권을 잡으며 1931년 조선어학회로 개칭한 후에도 민족계 신문, 잡지, 문학자, 교직 관계자 등으로부터 큰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어연구회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하여, 박승빈(朴勝彬)을 중심으로 조선어학연구회가 조직되고 조선어학회의 철자법안에 대한 반대운동을 펼쳐간다.
“조선어학회는 식민지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총독부 권력과 대립한 적이 없었습니다. 대립했다기보다는 오히려 한글 운동에서 조선어학회의 방침을 관철시키기 위해 총독부와 항상 긴밀하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지향ㆍ김철ㆍ김일영ㆍ이영훈,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책세상, 2006, 626~627면
즉 총독부 철자법, 특히 제3회 철자법의 제정은 1930년대 이후에 본격화하는 조선인의 언어 운동 전개 양상을 규정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미쓰이 다카시는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총독부 철자법에 대한 ‘조선인’ 측의 반응이 일원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해명이 되는 것”이라고 『식민지 조선의 언어 지배 구조』를 통해 말하고 있다.
또한 『식민지 조선의 언어 지배 구조』는 식민지라는 시대 배경에서 조선어라는 피지배 언어를 둘러싸고 전개된 ‘지배-피지배’라는 노골적인 정치적 역학관계를 보여준다. 식민지 조선이라는 공간에서, 한 시기에는 지배자 측에 의한 정책과 피지배자 측에 의한 운동과의 상호규정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 이 동태들은 총독부 측의 시책은 결코 ‘일관된 원리 원칙 아래 깊이 고려된 입법조치라든가 혹은 그것에 기초하여 세워진 일련의 작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지배체제나 사회 상황의 변화에 호응하면서 전개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동태성이야말로 식민지 조선에서 행해진 언어 지배의 하나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언어문제의 역사화를 향하여
일본의 식민지배와 언어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의 언어 지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일본어 강제와 조선어 억압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종래의 연구 대부분이 지식인의 담론 분석을 통해서 지배적이었던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에 출간된 『식민지 조선의 언어 지배 구조』는 언어정책이나 언어운동의 구체상을 일본의 식민지배와 언어문제를 역사가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명확히 밝힌다.
조선어 규범화를 둘러싼 그 전개 과정에서는 다양한 행동 주체의 의식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의미에서 역사 과정은 자명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인위적이었다. 미쓰이 다카시는 왜 이런 인위적인 역사 과정이 출현하게 되었는가를 고민하고 그 인위성을 분석함으로써 동시대의 사회구조와 그것을 뒷받침한 의식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식민지 조선의 언어 지배 구조』에 대해 저자 미쓰이 다카시는 부수적으로만 다루어지던 “식민지 조선에서의 조선어의 존재와 그것을 둘러싼 움직임에 철저히 집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국어로서의 일본어뿐 아니라 조선어의 존재를 역사화하는 작업, 이러한 ‘언어문제’의 역사화를 의식하고 실증적 수법에 집착한 결과물이 바로 『식민지 조선의 언어 지배 구조』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장 식민지 권력과 피지배 언어
제1부|조선총독부에 의한 조선어 규범화 정책
: 「언문 철자법」의 역사적 의미
제1장 식민지 시기 조선어 규범화 정책의 교육사적 맥락
제2장 지지받지 못한 언어 ‘규범’:「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1912)
제3장 조선인의 감시 대상이 된 언어 ‘규범’:「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 대요」(1921)
제4장 학무국에서 두통 중:「언문 철자법」(1930)
제2부|조선인에 의한 조선어 규범화 운동
:조선어 철자법 형성사를 중심으로
제1장 논점의 제시
제2장 조선어학회의 활동과 조선어학회 사건
제3장 ‘한글’에 패배한 조선어 철자법:박승빈과 조선어학연구회
종장 결론과 전망:‘언어 문제’의 역사화를 향하여
역자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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