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죽었다고들 하나 한 해에 간행된 '인문학'관련 책들이 어림잡아 2,000종을 훌쩍 넘는다. 빈사상태에 처한 줄 알면서, 그러니까 팔리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끈질기게 인문학 서적이 간행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중에는 저자와 역자들이 오랜 세월 공들인 책들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어려운 출판환경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악전고투 끝에 인문학의 '명품'들을 출산하고 있는 출판사들도 여럿 있다. 하지만 최근 간행되고 있는 이른바 인문학 관련 서적들 중에는 '짝퉁'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국 지성사의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 동서고금의 고전들,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시금석이 되는 동시대의 저작들, 다시 말해 팔릴 가능성이 희박한, '정신적 귀족'을 위한 책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폭넓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문학의 활로가 없다는 핑계를 들이밀며 대중적 취향에 영합하는 뻔한 상술로는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를 돌파할 가망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무늬를 보아 때의 변화를 관찰하고, 사람의 무늬를 보아 천하를 교화한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의 무늬'와 '사람의 무늬'가 조화를 이루는 세계, 이것이 인문학이 꿈꾸는 세계가 아닐까. 사람의 무늬는 이 세상을 살았고, 살고 있으며, 또 살아갈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