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문학 연구자들이 운동의 성과를 한국 근대문학사의 관점에서 연구한 결과물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3·1운동의 문학적 재인식』(소명출판)이 바로 그것. 매년 한국문학사의 주요 작가와 화제를 선정해 재조명하는 ‘문학과사상연구회’의 ‘재조명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다. 그간 3·1운동에 대한 개별 연구성과는 있었지만 한국문학 연구자들이 3·1운동을 주제로 함께 연구를 하여 단행본을 묶어낸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김영민 연세대 교수, 김재용 원광대 교수, 이경수 중앙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등 모두 10명의 한국문학 연구자들의 글이 실린 이 책은 3·1운동이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3·1운동의 영향으로 창간된 잡지부터 시와 소설, 해방 직후에 재조명된 민족운동으로서 3·1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의 시각과 관심은 실로 다양하다. 특히 염상섭의 데뷔작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연구한 세 편의 글은 3·1운동이 우리 문학에 어떻게 다채롭게 투영될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라는 같은 작품을 다뤘으면서도 세 편의 글이 도달한 해석은 다채롭고 독창적이다. 유관순 열사가 해방 이후 어떻게 3·1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가는 지를 실증적으로 밝힌 인하대 최현식 교수의 글 역시 이 책의 성과이다. 특히 권말에 실린 체코의 한국학 연구자 즈덴카 크뢰슬로바(Zdenka Kl?slov?, 1935~)의 글은 3·1운동이 체코에서 당시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어서 이채롭다. 3·1운동이 결코 한반도 안에서만의 사건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1부는 3·1운동 전후로 발간되기 시작한 두 개의 잡지를 다룬 글들을 소개한다. 3·1운동 이후 이른바 동인지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동인지가 우후죽순 격으로 출간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김영민 선생은 『창조』를 다시 읽으면서 3·1운동의 자취가 어떻게 『창조』에 투영되어 있는지를 섬세하게 밝혀낸다. 왜 창조가 ‘인생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게 되었는지, 『창조』를 단순하게 순수문학으로만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논증해내고 있다. 한편 이종호 선생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잡지 『삼광』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창조』 이전에 발간되었던 『삼광』을 통해 최남선, 이광수 중심의 『청춘』과 다른 논리를 이들이 어떻게 구축하려고 했었는지, 더 나아가 3·1운동 전야에 발간된 이 잡지가 그 운동이 지향하고자 했던 이념을 어떻게 구현하려 했었는지를 다룬다.
2부는 다소 독특한 구성이다. 모두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다룬 글들인데 저마다 다른 독법으로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해석하고 있다. 우선 김재용 선생은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구미, 혹은 서구적 근대에 대한 비판으로 읽고 있다. 국민국가의 틀에 갇혀 문학을 읽지 말고 지구적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작품을 읽을 때 새로운 해석의 장이 열린다는 필자의 평소 관점이 여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에 비해 한수영 선생은 이 작품을 구체적인 폭력과 고문의 기억으로 읽는다. 기존의 문학사적 해석에 덧붙여 염상섭이 실제 경험했을 법한 당시 일제시기의 육체적 폭력과 고문의 기억이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현식 선생은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문학사적 가치가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점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왜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작품이 아니라 3·1운동의 문학적 기념비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 편의 글들은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저마다의 관점으로 읽어냄으로써 궁극적으로 3·1운동과 이 작품이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3부는 시와 관련된 글들이다. 유성호 선생은 3·1운동 이후 그로 말미암아 한국의 시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시사적 맥락에서 두루 정리하고 있다. 이른바 낭만주의적 경향의 시부터 전통적 민요조에 바탕을 둔 서정시, 그리고 현실주의적 지향을 강력하게 드러낸 시 등으로 범주화하면서 3·1운동 이후 한국 시단의 변화를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 김신정 선생은 검열과 통제 체제 아래에서 3·1운동이 제대로 발화되기 어려운 국내 사정에 주목하여 해외 한인매체에서 3·1운동 관련 내용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시조, 가사, 창가에 이르기까지 당시 해외 동포들이 노래 형식으로 3·1운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상징화하려 했는지를 꼼꼼하게 분석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4부는 해방 이후 3·1운동에 대한 기억 혹은 3·1운동을 어떻게 역사화하고 있는가의 문제를 다룬 글들이다. 3·1운동은 해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금기에서 풀린 사건이 되었다. 그러므로 해방 직후 발표되기 시작한 3·1운동과 연관된 문학작품의 양상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단순 후일담에 대한 검토가 아니다. 해방과 함께 3·1운동은 비로소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우선 양문규 선생은 해방 직후 발표되었던 김남천과 함세덕의 창작 희곡작품에서 3·1운동 당시의 좌파 운동 세력이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글에 따르면 김남천, 함세덕 모두 좌파 지식인들을 그려낼 때 3·1운동 당시 광범위한 민중적 연대에 대해 깊이 있는 인식을 한 것까지는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해방 직후 진보진영 작가들의 현실 인식을 우회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이경수 선생은 해방 직후 문학가동맹에서 발간된 『삼일기념시집』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3·1운동이 어떻게 당시에 문학적으로 표상되었는가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꿈과 희망이 투영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거기에 단일한 목소리가 아닌 균열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분석의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최현식 선생의 글은 특히 필자의 공력이 돋보인다. 오랜 시간 우리에게 신화처럼 존재한 ‘유관순 누나 혹은 열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탄생되었는가를 밝힌 글이다. 유관순의 순국은 언제나 상찬받아야 하고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그에 대한 영웅화 작업은 과연 유관순의 행동만큼 순수했던가가 이 글이 겨누고 있는 바이다. 이 글은 해방 직후부터 상당 기간 동안 유관순을 의도적으로 영웅화하고 그에 앞장 선 사람들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3·1운동의 현재화에 얽힌 복잡한 과제도 아울러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금 특별한 글을 소개한다. ‘문학과사상연구회’의 회원이 아닌 이경수 선생과 이종호 선생께서 귀한 글을 보내주어 우리의 성과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셨는데 멀리 체코의 한국연구자인 즈덴카 크뢰슬로바 여사께서 귀한 글을 보내주셔서 더없이 기쁘게 생각한다. 1919년부터 1920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데니크(체코슬로바키아 일보)』에 실린 한국 관련 소식을 정리한 글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여사는 짧지만 중요한 글을 통해 1919년 3·1운동이 체코에서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를 잘 정리해 소개해주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서 발간한 이 신문에서 3·1운동이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 직접 일독을 권한다. 3·1운동에 대한 지구적 인식에 큰 도움을 주는 글이다.
목차
제1부
『창조』 다시 읽기
-3·1운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김영민 15
1. 『창조』의 창간과 3·1운동 15
2. 『창조』와 ‘인생을 위한 예술’ 22
3. 「생명의 봄」과 예술의 정체성 32
4. 마무리 47
‘청춘(靑春)’이 끝난 자리, 계몽과 개조의 사이에서
-잡지 『삼광』을 중심으로 / 이종호 50
1. 3·1운동의 전야, 『청춘』과 『무정』을 읽은 사람들 50
2. ‘『삼광』 동인’의 춘원·육당에 대한 비판적 인식 61
3. 계몽의 언어에서 개조와 해방의 언어로 72
4. 반(反)식민과 사이비 근대 비판-결론을 대신하여 80
제2부
구미 근대 비판으로서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제1차 세계대전, 3·1운동 그리고 한국 현대문학 / 김재용 87
1. 지구적 맥락에서 본 3·1운동 전후의 조선사회와 문학 87
2. 비서구 식민지에서 본 제1차 세계대전과 강화회의 89
3. 구미 근대의 비판으로서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92
4. 구미 근대 이후를 찾아서 97
‘죽음의 집’의 기억-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다시 읽기 / 한수영 100
1. 폭력의 경험으로서의 3·1운동과 소설 재해석의 시좌 100
2. 신념이냐 광기냐-고문의 ‘기록/증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113
3.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조소(嘲笑)와 자괴(自愧)의 간극 123
4. ‘그날’ 이후의 김창억, 그리고 가족들 129
5. ‘나’는 누구인가 138
6. 폭력의 경험, 그 후에 남은 것들-맺음말을 대신하여 146
3·1운동의 문학적 기념비로서 「표본실의 청개구리」 / 이현식 149
1. 「표본실의 청개구리」,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인가? 149
2. 문예사조로 문학사를 설명한다는 것의 의미 151
3. 3·1운동의 이념-사회진화론에 맞서는 세계평화주의 155
4. 「표본실의 청개구리」, 3·1운동의 세계관을 그리다 160
5. 3·1운동의 문학적 기념비, 「표본실의 청개구리」 166
제3부
3·1운동 이후의 시사적 맥락 / 유성호 171
1. 본격적인 근대문학의 개화 171
2. 근대전환기의 시적 주체 173
3. 넓은 편폭을 지닌 동인지의 세계 176
4. 당대 현실에 대한 시적 반영과 전개 190
3·1 기념시가의 수용 방식과 상징성
-1920~1930년대 해외 한인 매체를 대상으로 / 김신정 197
1. 서론 197
2. 3·1 기념시가의 수용 방식 205
3. 3·1 문학표상과 의미 216
4. 결론 229
제4부
3·1운동 형상화를 통해 본 해방 직후 좌파의 현실인식 / 양문규 235
1. 머리말 235
2. 김남천의 〈삼일운동(三一運動)〉 239
3. 함세덕의 〈기미년 삼월 일일(己未年 三月 一日)〉 245
4. 맺음말 257
해방기 시에 새겨진 3·1운동의 기억 / 이경수 260
1.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며 260
2. 해방기의 인정투쟁과 3·1운동의 의미 263
3. 해방기 시가 기억하는 3·1운동 268
4. 기억과 역사 283
‘유관순’을 호명하는 몇몇 시선과 목소리 / 최현식 287
1. 명명과 인정투쟁, ‘유관순’이라는 기호의 탄생 287
2. ‘유관순 이야기’의 기원과 문화정치학적 배경 301
3. 유관순, ‘사실’ 혹은 ‘발명’의 존재론 307
4. ‘유관순 이야기’의 규약 혹은 동일성 협약의 몇몇 장면 318
5. ‘국정(國定)’ 교과서에 호명된 유관순의 빛과 그림자 347
6. 유관순이라는 기호가 말하는 것-결론을 대신하여 365
부록
러시아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신문 『체코슬로바키아 데니크(체코슬로바키아 일보)』를 통해 본 한국 뉴스(1919∼1920) / 즈덴카 크뢰슬로바, 양문규 역 377
역자 해제 377
1919년 3월 1일 379
문화정치 개혁 385
한국에 대한 기사를 쓴 『?SD』 언론인, 스타니슬라브 코바르즈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