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사
한말의 의병운동은 우리나라 근대민족운동의 한 갈래로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불과 20여 년의 짧은 시기에 전개된 사건이기는 하나, 한말의 의병운동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우리나라 근대 민족운동과 민족주의의 발전과정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다.
그동안 학계의 연구성과가 쌓여 한말 의병운동에 대해 상당 부분에 걸친 해명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역의 자료 발굴이 활성화되면서 의병운동과 지역 기반과의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다. 특정 지역 의병운동은 사상적 ・ 인적 ・ 물적 토대를 제공한 해당 지역의 역사이기도 했다. 따라서 한말기 특정 지역의 역사성 내지 일정한 공간적 개념 없이 서술되는 의병 연구는 단순한 전투사례의 나열의 될 뿐이다. 관련 전문학자들이 지역의 구조적인 이해를 위한 지방사 연구를 활성화하고 시 ・ 공간적인 지방사로서 의병운동을 적극 연구하는 의의는 여기에 있다.
'원주의병'에 대한 연구는 1976년 『原州 ・ 原城鄕土誌』 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고 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의 노력하여 일부의 사실과 관련 사적을 조사한 바 있다. 지금까지 '원주의병'과 관련된 것으로 乙未의병의 경우 제천 ・ 춘천 의진을 중심으로 명망가인 의병장이나 의병부대의 활동에 관한 개별 연구가 있다. 그나마 제천이나 춘천, 영동중심의 지역성이 강조되어 우너주의 지역성과 '원주의병'을 독자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乙巳 ・ 丁未 의병의 경우는 분명히 원주에서 주도된 사실 때문에 타 지역 기존 연구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원주의병'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규명은 차치하고 기본적인 사실 파악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한말 전 시기 동안 '원주의병' 전체를 놓고 연구한 것은 없었다. 당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원주 인근에서 일어난 의병은 실제로 상호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의 공통된 물적 기반과 목표 위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향후 관심을 갖고 추적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현황 인식을 근거로 본 연구단은 '원주의병' 연구의 체계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기초 자료수집에 나섰다. 역사학에서 자료는 곧 역사라는 나무를 키우는 땅과 같다. 자료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자료로부터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쓰러지는 나무처럼 역사 역시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자료의 수집과 정리는 모든 연구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원주의병 관련 자료는 한국사회가 겪은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역사적 파행 때문에 극히 불완전하게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분산되어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설사 개별 연구자가 원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자 하더라도 자료 수집과정에서 당장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자료상의 한계는 분명 원주가 그 동안 인문 ・ 사회과학적인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부각되지 못했던 중요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원주독립운동사연구사업을 충실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최우선 사업으로 자료 탐사와 수집, 정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자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때 집중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