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염상섭의 초기 대표작의 하나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기존의 해석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다시 읽기 위해 쓴다.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3·1운동’의 후일담에 해당하는 소설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신경증이나 ‘김창억’의 광기도 ‘3·1운동’의 실패와 좌절로 인한, ‘시대의 우울’이나 ‘정치적 광기’로 해석해 온 것이 일반적인 해석의 관행이다.
이 논문을 통해 내가 읽어내고자 하는 것은,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고문당한 자/고문에 스러진 자’에 대한, 좀 더 직접적인 응시와 기록으로서의 특징이다. 즉, ‘표본실의 청구개구리’는 그 ‘고문당한 자/고문에 스러진 자’의 후일담이다. 그것이 이 소설을 ‘액자형식’으로 만든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소설은, ‘고문당한 자/고문에 스러진 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염상섭은 ‘고문당한 자’에 못지않게, 그들의 가족 또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감옥이나 ‘고문’에 염상섭이 얼마나 민감했었던가 하는 것은 그의 다른 대표작들인 ‘만세전’이나 ‘삼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이러한 맥락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3·1운동’의 기억과 재현에 관한 염상섭의 작가적 역량과 면모를 재인식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의 리얼리즘이 지닌 특질에 대해서도 우리를 새롭게 환기시켜 준다.
‘3.1운동 후일담’으로서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문’의 가혹함이나 운동의 폭력적 진압에서 나타난 일제의 잔악함의 고발뿐 아니라, 그 후에 지속되는 ‘일상으로서의 고통’에 주목하는 작가의 통찰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염상섭의 ‘리얼리즘’의 특질이다. 염상섭은 언제나 ‘폭력’이 ‘일상의 질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고자 애썼다. 그 폭력과 ‘폭력의 경험’은, 일상을 파괴하는 동시에 ‘파괴된 일상’에 의해 다시 ‘일상’을 구축해 나가는, 이중의 ‘고통’을 만들어낸다. 해석자들에 의해 종종 ‘통속성’이나 ‘자연주의적 퇴행’으로 오인되는 이 특징의 정확한 이해야말로 염상섭 소설을 제대로 해석하는 한 관건이 될 것이다. 그 소설쓰기의 긴 여정의 초입에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