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5월 이후 발간된 『제국신문』은 신문구독률을 높여 신문을 통해 대중의 성장을 이끌고 문명개화, 자강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에 「논설」을 통해 신문의 필요성, 유익성 등을 강조하였으며, 「유지록」을 통해 신규 구독자를 게재하였다. 그런데 「유지록」은 독자층을 기록한 것이었기에 『제국신문』의 구독자와 구독지역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유지록」에 의하면 『제국신문』은 애국계몽운동 단체, 특히, 서북학회의 지회가 설치된 곳을 중심으로 근대문물을 일찍부터 접했던 지역인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에서 주로 구독하고 있었다. 이는 『제국신문』이 하층민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주 구독층은 근대지식을 이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층민, 부녀자 등은 주로 학교 · 신문종람소 같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 곳에서 구독한 것으로 보여진다.『제국신문』은 하층민, 부녀자 등을 대상으로 한 신문이었지만 다양한 계층이 구독한 신문이었다.
한편, 의병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인 강원, 경북, 전남, 충북 등지에서는『제국신문』의 신규 구독자가 거의 없었다. 이들 지역은 위정척사사상의 대표적인 학파인 화서학파, 노사학파의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즉, 이 지역은 근대학문, 국제정세 등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지만 『제국신문』이 추구하는 풍속개량을 통한 문명개화론까지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겠다.
『제국신문』은 의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인식은 당시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등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신문』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운복이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친일세력이 간여하면서 성격이 다소 변질되었다. 이는 의병인식에 영향을 미쳐 각종 매국행위에 앞장섰던 일진회에 대한 의병의 처단도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였다. 기존의 문명개화론에 친일적 성격이 가미되어 의병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의병에 대한 기사도 부정적인 것이 많았던 것이다.
『Jeguk-Shinmun(帝國新聞)』is a newspaper intended for the underprivileged and women. However, it can be said that the newspaper which subscribed by various classes based on the subscribers is a newspaper that envisioned a modern nation centered around modern citizens. Therefore, the perception of the Righteous Army who pursued the defense of national rights through armed struggle was negative. Therefore, Newspaper articles about the Righteous Army was negative rather than positive.
『Jeguk-Shinmun(帝國新聞)』 had negative recognition to the patron. Such recognition had such as 『皇城新聞』, 『大韓每日新報』 at that time. However,『Jeguk-Shinmun(帝國新聞)』 recognizes the soldiers with existing civilization Gefiron adding the character of their own affection. Therefore, the articles of the Righteous Army were also often neg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