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근대소설은 전통적인 조선시대의 소설이 서구 또는 서구화를 꾀한 일본문학에 접촉·촉발되어 변화를 일으키며 제작·생산되었다. 특히 1910년대 이후 우리 소설은 이전의 전통소설과 상당한 단절을 겪으면서 근대적 서구소설의 구성 원리를 모델로 근대소설을 실현해간다. 기존의 문학사들은 이러한 소설사의 전개 과정을, 직선적이고 발전적인 관점에 서서 우리 소설이 과거 전통 소설의 구태로부터 탈피하여 서구소설을 모방하고 이를 정착시킴으로써 근대소설을 성취한 것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우리 근대소설이 서구의 소설문화와 만나 그것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졌는지, 설사 그렇다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다.
서구 근대소설과 달리 우리나라의 소설은 민속적인 주변 장르와 연관된 조선 후기 판소리문학으로 문자문학으로서 통일성과 정연함을 갖추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구연 상황과 다채로운 구어 표현의 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우리의 근대소설은 이러한 판소리계 서사체의 전통에서 발견되는 이른바 공식문화의 대립 항이자 ‘민중의 웃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민속적 오락성이 그 특징이며, 구어전통을 생산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신소설은 이러한 방식들을 부분적으로 계승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어체의 전통은, 우리 문학이 1910년대를 통과하며 서구문화의 영향권 안에 놓이면서 일순간 위축해 버린다. 인물의 내면성을 그리는 것이 소설의 근대성을 보증하는 것이 되면서, 오락적이며 사건 중심의 고소설이나 신소설을 기술하던 구어적 표현은 소멸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단순히 언어 내부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 이야기 서술의 전통을 긍정적으로 계승 못 하며 더 나가서 우리 근대소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성취되는 길을 방해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소설사는 점차 서구 소설 그리고 서구를 흉내 낸 일본문학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 판소리 문학에서 보여준 민중적, 구어체적 전통을 계승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새롭게 받아들인 서구문학과 소통시키고자 하는 모색이 시작되었다.
이 책 『한국 근대소설의 구어전통과 문체 형성』(소명출판, 2013)은 그러한 움직임에 동참한다. 우리의 근대소설이 고전소설의 구어체적 전통을 수용하면서, 공동체적 경험을 지향하는 것과 개인 또는 자아, 그리고 개성 및 내면을 추구하는 서구의 근대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이 책은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성취하게 되는 새로운 문체의 성립을 논증하는데, 다시 말해 조선 후기 판소리문학 또는 판소리계소설을 비롯한 국문소설에서 보이던 구어의 전통이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서구소설의 미학적 원리와 만나 문체의 측면에서 어떻게 독창적인 재구성을 해내는가, 그리하여 전통문화와 서구문화의 바람직한 ‘순환적 교류의 상호 작용’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식민지 시기 소설사에서 구어 전통의 측면에서 문학적 성과를 보여준 작품들을 재평가하여 이를 문학사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소설사 내부의 문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있는 현학성과 난해성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표현의 길을 찾게 한다.
『한국 근대소설의 구어전통과 문체 형성』에서 구어체는 근대계몽기 이후 주장되어온 언문일치체와는 다른 것을 가리킨다. 근대계몽기 지식인들이 주창한 언문일치의 표면상 목적은 문자어를 구어에 맞게 하는 것이었지만, 실제의 목적은 기존의 문어를 대신한 새로운 문어를 만드는 측면도 갖고 있었다. 여기서 구어체란 이미 판소리문학 등 조선 후기 국문소설 등에서 적극 나타나기 시작한 문체이다. 그러나 『한국 근대소설의 구어전통과 문체 형성』은 그간 논의되어온 ‘구어체’ 연구와는 확연히 다르다. 소설문학에서 진정한 구어체는 단순히 문자언어와 구두 언어를 물리적으로 일치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기보다는, 작가 또는 화자가 등장인물, 청자(독자)와 소설 안에서 인격적으로 미학적으로 함께 하는 데 있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이를 통해 공동체 인식에 근거한 소망을 전달하며 민중적 가치관을 지향한 점은 이 책의 차별성이다.
또한 구어체 논의의 범위를 다시 확정하여 논의를 전개했다. 소설문학의 구어체는 일차적으로 등장인물의 발언을 재현하면서 이뤄지고, 더 나아가 화자가 소설 안의 비언어적 현실, 지문 등을 서술하는 경우에도 이뤄진다. 그리고 근대소설은, 과거 판소리ㆍ야담문학과 달리 화자와 독자(청중)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지만, 구어체적 성격의 근대소설은 대신 구연 상황과 유사한 내포적 소통상황을 통해 양자 간의 유대를 유지하며 서술하는 가운데 이뤄진다. 『한국 근대소설의 구어전통과 문체 형성』은 이러한 세 가지 층위를 대상으로, 구어체를 ‘구어적 표현(일상의 대화언어, 비속어, 방언, 속담 등의 관용어, 의성ㆍ의태어 등)’과 청자(독자)를 대상으로 발화하는 ‘구어체 서술방식’의 두 측면을 아울러 살펴본다.
그동안의 연구는 우리 근대소설에서 구어전통의 계승을 김유정, 채만식 등 그 표지가 뚜렷한 작가를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논의해왔다면 『한국 근대소설의 구어전통과 문체 형성』은 조선 후기 국문소설에 나타났던 구어전통이 근대문학에 들어오면서 어떠한 사정과 배경 아래 위축이 되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1920년대 소설들 특히 염상섭, 현진건, 나도향 그리고 이기영, 한설야의 리얼리즘 작가들은 이러한 위축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고자 하며 이러한 구어체 전통의 모색이 1930년대 일련의 작가들에 의해 어떻게 발전적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지를 통시적으로 논의한다.
박태원은 흔히 서구 모더니즘 소설의 시학을 따른 작가로 평가되지만, 『한국 근대소설의 구어전통과 문체 형성』은 그의 소설들에 나타난 다양한 구어적 포즈에 주목하여 서구와 구어전통의 교호 작용을 살폈다. 아울러 박태원이 종래 김동인, 이광수 등이 주도한 언문일치와는 또 다른 문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옛이야기의 방식을 본격적인 서사적 글쓰기로 변형하면서 구어체가 어떤 기여를 하며 그것이 근대소설에 어떠한 활력을 불어넣는지를 확인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특히 이미 판소리 문체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있는 김유정의 문학이 이러한 문체 계승을 통해 어떻게 서구 리얼리즘 문학을 보완하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당시 표준어 제정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김유정이 구사한 사투리 등의 구어적 표현의 의미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며, 채만식 문학에서는 그의 문학의 판소리 문체의 성과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연구와 달리 이 책은 그러한 평가에 동의하면서도 채만식을 박태원, 김유정 등과 비교하여 그의 문학에서 구어체가 드러낸 부정적 측면을 말한 것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