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토토기스』 수용 과정을 통한 근대의 시대상과 문학의 이해
이 책은 도쿠토미 로카의 소설 『호토토기스』가 일본과 한국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주목한 연구서로, 『호토토기스』 수용 담론의 변화와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로 번역되는 과정에 시선을 두고 있다. 1900년 간행된 『호토토기스』는 백만 부를 돌파한 메이지 시대 초유의 베스트셀러로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시·각본·노래·영화 등으로 번역되었고, 원작을 모방한 속서가 속출하였다. 이 책에서는 원작과 원작에서 파생된 통속소설간의 상호 보완적인 수용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문단을 넘어 광범위한 대중독자로 확산된 『호토토기스』 현상을 미시적으로 분석했다.
한국에서는 1912년 선우일이 번안한 『두견성』과 조중환이 번역한 『불여귀』가 거의 동시에 출간되고 상연되었다. 이와 같이 동일한 원작에서 이질적인 텍스트가 생성되는 모습은 의미심장한 문화사적 의미를 갖는다. 번역 『불여귀』와는 달리 ‘조선풍’의 번안 『두견성』은 일본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이 한 몸에 뒤섞인 쌍생아임을 보여준다. 한문에서 한글로 전환하는 과도기였던 1910년대의 언어·문체·표기체계의 변화에 발맞춰 만들어진 번안/번역 텍스트는 식자능력에 따른 독자층의 분화를 보여주며 교양·감수성·취미·도덕감정·소설 관념 등의 변화와 맺는 관계를 통해 다양한 진폭으로 반사되어 나간다.
이 책은 한자어의 문자성에 입각한 『두견성』의 번안과 일본어의 음성적인 면을 의식해 구술을 바탕으로 한 『불여귀』의 번역 과정을 추론하여 원작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를 가시화함으로써 번역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원작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흡수하여 재구성한 『두견성』과 『불여귀』는 신소설과 번안 소설로 계승되어 식민지 조선이 만들어내는 서사의 향방을 가늠하는 근대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 『호토토기스』의 번역/번안 이후 이혼·질병·고부간의 갈등을 모티프로 하는 서사가 급증한 점을 통해 1910년대 서사의 지형 변화에 의해 대중의 기호가 길들여지는 모습과 오늘날에도 익숙한 멜로드라마의 서사 관습이 자리 잡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또한 그 와중에 살펴볼 수 있는 1910년대 조선의 ‘러브신’ 명장면, 부부애라는 새로운 풍속도는 한국의 연애 문화 연구에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한다.
또한, 당대의 자료를 통해 원작을 새롭게 해석하여 일본 근대에 작동한 ‘직분’ 이념과 러브의 욕망을 들추어냈으며 시대에 따라 텍스트를 읽는 방식과 텍스트 수용이 변화하는 점을 탐사하여 근대화의 여정을 공유하는 근대 동아시아 보편성의 사유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책은 텍스트에 밀착한 내재적 분석을 통해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읽어내고 문자와 음성, 시각성·청각성 등 미디어의 문제를 번역의 핵심 의제로 제기하여 한국어·일본어·문학·삽화 등 언어 및 분과학문의 융합과 통섭적 사유를 제시한다. 저자의 오랜 담금질의 소산인 부록은 참고문헌 목록과 원작, 번역 텍스트 및 한국어 번역/번안 구성 대조표, 원작의 아류작 속서(俗書) 목록 등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호토토기스[不如歸]』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의 번역·연극·문화 관련 연구자들에게도 유익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