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분석으로 근대문체의 기원과 성립과정을 밝히다
한일 근대초창기문학자인 후타바테이 시메이와 김동인은 소설을 쓸 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러시아어로 쓴 다음 일본어로 번역했고 김동인은 일본어로 구상한 다음 한국어로 썼다. 한일 근대초창기문학자들에게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왜 소설을 외국어로 쓰거나 구상해야만 했던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의문을 출발점으로 이와노 호메이와 김동인의 소설의 묘사, 번역, 언문일치, 시점, 작품세계 등을 검토하면서 근대초창기 문학자들이 고통스럽게 만들어낸 근대문체의 기원과 성립과정을 밝히고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일본문학과의 관련성을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김동인을 비롯해 이인직, 최남선, 이광수, 염상섭 등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은 대부분 일본에 유학한 경험이 있으며 그들을 빼고 근대문학을 논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문학은 일본문학과의 관련선상에서 연구해야만 객관적이고 정확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관련성을 다룬 연구는 많이 있었지만 피상적인 연구가 많았고, 텍스트 분석을 통해 문체를 치밀하게 검토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근대문체가 근대 이전의 문체와 다르다는 점은 밝히고 있지만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많은 한국문학연구자들이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일본문학연구자 대부분이 일본문학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 한일양국의 문학을 동시에 연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한일양국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한일 근대문체의 내실을 치밀하게 검토하여 해명하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저자는 이 주제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김동인의 “일본말로 구상하고 조선어로 썼다”라는 말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소설을 구상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연구의 출발점인 것이다. 김동인이 일본어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배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깨달았다’라는 근대문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보면 너무나 당연한 소설문체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기원을 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그’라고 하는 삼인칭대명사, ‘ㅆ다’라고 하는 과거시제, ‘일 것이다’라고 하는 추량표현이 생략된 ‘그는 깨달았다’와 같은 문체는 일상언어와 소설언어를 구별하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소설문체였다. ‘깨달았다’는 일인칭과 호응하는 주관감정동사인데 ‘나는 깨달았다’가 아니고 ‘그는 깨달았다’라고 하면서 추량표현을 생략한다. 삼인칭대명사 ‘그’, 추량표현이 생략된 과거시제 ‘ㅆ다’가 일상언어와 소설언어를 구별하며 이러한 문체는 소설이 허구이고 거짓말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동시에 삼인칭을 사용함으로써 화자와 주인공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객관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오로지 작중인물 한 사람만의 내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성과 주관성을 동시에 유지하는 소설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문체인 언문일치체는 말과 글이 일치하는 문체가 아닌 새로운 문체의 탄생이었다. 이 문체를 구사하기 위해서 김동인은 일본어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한일 근대문체의 내실 비교를 통해서 한일 근대문체의 형성과정을 밝혀냈다. 제1장에서는 김동인과 이와노 호메이의 일원묘사와의 관련성에 대해 검토하였다. 제2장에서는 ‘He’ ‘She’의 한국어와 일본어의 번역을 통해 삼인칭대명사의 번역과 삼인칭고백담론의 성립을 보았다. 제3장에서는 이와노 호메이의 「오부작」의 초고와 개정판의 비교,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과 그 이전 소설(신소설)의 종결어미 비교를 통해서 한일 근대소설의 종결어미와 언문일치의 관련성을 보았다. 제4장에서는 「끊어진 다리」, 「이불」, 「배따라기」를 보면서 화자의 시점과 내면세계를 보았다. 제5장에서는 한일 자연주의 및 리얼리즘소설의 작품세계를 비교ㆍ검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