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문학과 비평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는 책
비평계의 성찰적 논객 권성우 교수의 두 번째 연구서이자, 여섯 번째 저서에 해당되는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먼저 <근대문학 연구와 비평의 대화>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이 시대 문학장에 대한 문제의식이 식민지시대의 문인을 통해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 책의 1부 <임화의 저항과 현재성>에서, 저자는 1940년을 전후한 시기에 발표된 임화의 산문과 비평, 문화담론이 지닌 현재적 의미에 대해 각별하게 주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19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임화가 발표한 비평과 산문에는 지금 이 시대 문학의 중요한 쟁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가령, 역사성과 정론성을 상실한 당대 문단에 대한 예리한 성찰, 작품에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밀착한 해설 비평에 대한 비판, 공론성을 상실한 제도화된 비평의 문제, 미디어에 종속된 문학과 비평의 위상, 문화적 획일주의에 대한 저항, 논쟁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문제제기, 당대 문단의 제도적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등은 임화가 비평적으로 고투했던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대뿐만 아니라 바로 이 시대 비평의 핵심적인 논점이자 의제이기도 하다. 당시 임화의 발언들은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나 베네딕트 앤더슨, 김명인, 권성우, 이명원 등의 지금 이 시대의 사상가 및 비평가들의 몇몇 발언과 정확히 겹쳐진다. 이처럼 임화의 비평담론은 지금 이 시대 비평의 풍경을 되비추는 거울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라면 비평장르를 둘러싼 의제도 반복되는 것이리라. 특히 인상적인 점은 임화가 당시의 신문과 잡지가 지닌 권력적 속성을 ‘선택과 배제’의 역할을 통해 설명하는 대목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60~70년 전에 발표되었던 임화 비평의 현재적 의의는 참으로 뚜렷하다. 이 시대의 비평가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60여 년 전에 임화가 고민했던 비평적 의제에 대해 여전히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임화의 1940년을 전후한 시기의 글쓰기는 지금 이 시대와 대결하고자 하는 비평가들에게 귀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의미 깊은 탐구대상이리라.
두 번째로 이 책은 시, 소설 등의 기본 장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학문적 습속과 제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시, 소설 등의 중심 장르를 대상으로 한 학술적 관행이나 비평적 습속은 여전히 완고하다. 이 책의 제목을 『횡단과 경계』로 한 것은 이 같은 장르적 규범에서 탈피했을 때, 새로운 학문적 시선을 확보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과 연관된다. 이 책에 수록된 이태준의 기행문이나 수필, 김남천의 산문(에세이), 임화의 문화담론과 산문에 대한 연구는 바로 이러한 학문적 아젠다의 발로이다. 말하자면, 한 문인이나 비평가의 은폐된 무의식이나 욕망까지 섬세하게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의 수필, 기행문, 산문, 일기 등의 변두리 장르에까지 연구 대상을 폭넓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시선을 통해, 당시 퇴폐주의를 옹호하는 임화와 허무주의에 얼마간 경도된 김남천의 복잡한 내면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식민지 시대 진보적 지식인에게 드리워진 다양한 균열의 지점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